크툴루의 부름(COC) TRPG LOG

 

 

 

바다의 혀

 

가 진 X 사 록

 

PC: 사 록

2020.02.01 ~ 2020.02.06

가 진 :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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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혀

 
[ 20XX. 12. 28 PM 13 : 39… ]
 
"야, 어디가냐?"
 
아, 차가워... ... 신발 가죽이 젖어드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립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애인의 목소리가 더 빨랐나요
 
순서를 가늠할 새도 없이 살을 에는 냉기에 발끝이 곱아듭니다
 
거품이 팔 할인 하얀 파도가 복사뼈를 적시고 부서집니다
 
아무래도... ... 한 쪽 발이 젖은 것 같죠
 
낭패입니다... ...
 
가 진:"갑자기 바다 쪽으로 걸어가서 놀랐잖아."
 
가벼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너를 잡아 당겼다. 아무래도 너무 추워서 넋을 놓은 것 같았다. 아무리 춥다고 해도 그렇지, 멍청하게 바다에 들어가면 어떡하냐. 중얼대며 올려다봤다.
 
"이 겨울에 수영이라도 하게?"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고요?
 
달리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
 
젖은 모래가 신발코를 따라 미끄러집니다
 
사 록:젖은 신발이 신경쓰였다. 나름 아끼는 신발이었는데 더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다. 미간이 구겨졌다. 신발 안, 그러니까 발이 젖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정말 안녕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짜증을 그대로 담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겠냐고."
 
소금물에 양껏 젖은 한 쪽 발이 무겁습니다
 
혹시 몰라 캐리어에 여분의 신발을 챙겨 넣었던 것이 다행이군요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 시간을 떼울 겸 점심을 먹고 이 주변을 걷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
 
애꿎은 신발을 버렸다는 생각에 자꾸만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신발을 버렸다는 억울함도 잠시
 
... ...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파랑, 다소 싱겁게 느껴지는 바닷바람, 핏기 없는 해변의 모래사장
 
손가락이 꺾일 것만 같은 매서운 날씨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이곳은 아름답죠
 
문득 걸어온 길의 반대편을 돌아봅니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을 이기지 못해 서늘함만을 간직한 모래사장 위로 오로지 두 사람의 발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습니다
 
하늘은 냉기를 머금은 바다의 색을 반대로 반사한 듯 탁하고, 창백하며, 채도 낮은 푸른 색을 띄고 있습니다
 
가 진:"그러니까 좀 그렇게 멍청하게 걷지 마."
 
자! 당당하게 내민 손끝이 붉었다. 사실 손이 차가우니까 네 손의 온기를 빌리고 싶은 탓도 컸다. 종용하듯 손을 파닥대며 주위를 둘러보면, 역시 날씨가 날씨니만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너랑 나, 그리고 저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커플 한 쌍... ... 그리고 홀로 겨울 바다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여행객 정도? 원래도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고개가 빳빳해졌다.
 
"빨리이."
 
사 록:귀여운 새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추운 날씨이긴 했지만 평소의 두세배 정도로 부풀어있는 조그만 놈의 머리를 성의없이 쓰다듬고 손을 잡았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재촉하는 말이 칭얼거림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뭐가 됐든 신상에 이롭진 않았다. 잡은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너 살아있긴 하냐? 시비 비슷한 말을 건네며 손을 자켓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쏴아아... ... 메마른 백사장 위로 파도 소리가 밀려 올라왔다가 스며들길 반복합니다
 
어쩐지 기분이 몽롱합니다
 
바다에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던데,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가 진:네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귀마개도 같이 흔들렸다. 따뜻한 손을 꾹 잡고는 휘적휘적 바닷가를 걸었다. 겨울 바다는 다 좋은데 너무 추운 게 문제란 말이지.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저 멀리 있던 커플이 곧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건데. 생각하다 주섬주섬 남은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야, 두 시 오 분이다. 체크인 시간 다 돼가니까 리조트로 가면 안 돼?"
 
나 진짜 춥단 말야. 분명 꽁꽁 얼어서 코가 붉게 변해 있을 게 분명했다.
 
사 록:"가자. 나도 추워."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밖에 조금만 더 나가있었다간 사하라도 얼어 죽을 정도의 날씨였다. 실제로 얼어죽진 않겠지만. 얇은 셔츠 한 장만 걸치게 하고 내보내면 얼추 죽지 않을까? 안 죽겠지만. 얼어버린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어느 방향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진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말없이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가 진:대답을 하기에도 추웠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거려도 알아서 알아 들을테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네 손을 잡아 끌었다. 분명 어디로 가는 지 기억도 못 하겠지. 하지만 사록은 귀엽고 예쁘니까 그래도 됐다. 이렇게 추운데 손이 따뜻하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딱히 안 추워도 시체 정도의 온돈데. 괜히 손가락을 꼬물댔다.
 
당신은 애인을 뒤따라 천천히 다리를 움직입니다
 
당신의 시선이 온전히 거두어지기 전에... ...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끝을 모르고 새하얗게 깔려 있는 백사장 위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발자국은... ... 바다 쪽으로 쭉 이어져 있습니다
 
보글보글, 밀려드는 파도가 야금야금 그 흔적을 먹어 치웁니다
 
BGM : Paniyolo - Coloring ◁Link
 
[ PM 14:13 ]
 
회전문을 타고 로비에 들어서는 즉시 난방으로 인해 훈훈한 온기를 느낍니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손가락이며 양 뺨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기 무섭게 당신의 애인이 당신을 프런트 데스크 쪽으로 이끕니다
 
유니폼을 단정히 차려 입은 직원 두어 명이 업무를 보고 있네요
 
프런트는... ... 이미 체크인을 하기 위해 몰려든 투숙객으로 만석입니다
 
겨울 바다만의 운치를 만끽하기 위해 부러 성수기를 피해 투숙하는 방문객도 적지 않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투덜대는 당신의 애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기다리면, 곧 무리였던 사람들이 걷히고 금방 둘의 차례가 옵니다

 
직원: "환영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겠다는 것처럼 지어지는 웃음이 퍽 자연스럽습니다
 
사 록:여름 바다가 보기 좋긴 하지만 겨울 바다도 만만찮은 모양이었다. 꽤 많이 들어차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사람이 많으면 일하는 사람을 늘려도 좋을 텐데. 연말에 집에 있지 않고 겨울 바다나 보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을 못했나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앞에 두고 어색한 웃음을 띄웠다.
 
"…체크인하려고요."
 
직원: "예약 확인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예약자 분의 성함을 말씀해주시고, 신분증을 제시해주세요."
 
직원의 말이 끝나자 말자 프런트 위로 가느다란 손이 스윽, 지나갑니다
 
빠르게 신분증을 준비한 당신의 애인은 뿌듯한 얼굴로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신분증을 제시하면 직원은 곧 한구석에 마련된 서류를 건넵니다
 
직원: "예약된 객실의 입실 가능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는 동안 서류를 작성해주세요."
 
흰 색의 서류 위로 검은 색의 볼펜이 올라옵니다
 
직원은 데스크 PC의 모니터를 몇 번 두드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서류를 확인하면 여느 숙박업소에서나 받아볼 수 있을 법한 형식적인 사항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을 적을 수 있는 공란과 전염 위험성이 있는 병을 가지고 있는 지에 관한 여부, 그런 것들
 
서류를 적어내려가면 하단에 리조트 이용 약관, 주의사항, 취소 날짜에 따른 환불 금액 따위가 명시돼 있는 게 보입니다
 
서류를 모두 작성하고 직원에게 건네면 직원은 대뜸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직원: "시설 파손 문제로 인해 예약하신 객실로의 입실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급하게 입실 가능한 다른 객실을 알아보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사 록:아, 뭐, 어쩔 수 없죠. 순하게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하얀 귀마개를 머리에서 뽑아냈다. 흐트러진 머리를 설렁설렁 정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머리가 뻗치면 화난 소동물 같을 테니까. 웃음거리로 만들 수야 없지.
 
"기다려야겠네. 안 힘들어?"
 
가 진:동그란 얼굴 곳곳이 난방의 습격을 받아 조금 더 붉어졌다. 귀마개를 빼앗기니 영, 허전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거 줘라, 야아. 칭얼대는 목소리가 더해졌다. 직원을 노려봤다가, 다시금 돌아오는 시선이 쉽게 순해졌다.
"어엉, 힘들어. 완전. 다리도 아파."
 
매섭게 노려보는 애인의 시선 탓에 풀이 죽은 직원이 연신 사과하는 게 조금은 딱합니다
 
군말없이 손을 휘휘 젓자 직원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애인의 눈치를 보며 슬슬 뒷걸음질 칩니다
 
어쩔 수 없이 직원의 호출이 있을 때까진 로비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 록:"들어가면 쉬자."
 
등을 토닥여가며 직원에게서 신경을 돌려놓으려 애써봤다. 어린애가 아닌 이상 이런 행동으로 산만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시야를 몸으로 가릴 수는 있었다. 조그만 놈이라 다행이었다. 손을 다시 잡고 로비를 둘러봤다.
 
로비를 전체적으로 둘러봅니다
 
은은한 블랙펄과 화이트톤의 대리석 조합을 자랑하고 있네요
 
간간히 배치되어 있는 우드가 부담스럽지 않은 프라이빗한 느낌을 더합니다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는 벽면 전체는 유리로 처리되어 있어 탁 트인 뷰가 가히 인상적이군요
 
중앙에 조형물을 올린 커다란 분수가 놓여있고, 그 위로는 크리스털로 세공한 와인잔을 뒤집어 매단 듯 눈부신 샹들리에가 금색의 빛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프런트 데스트 주변에 예비 투숙객들을 위한 라운지 형식의 대기석이 마련되어 있고, 두 사람은 이곳에 서 있습니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카페도 눈에 들어옵니다
 
가 진:"그럴 거다, 뭐."
 
투덜대며 툭, 네 어깨 쯤에 머리를 기댔다. 드문드문 바랜 색의 금발이 얇았다. 그냥 괜히 투덜대고 싶었던 것 뿐이었으므로, 남은 손을 들어 네 허리께를 살살, 쓰다듬었다. 네 어깨 너머로 전화도 받고 서류도 쓰고 하는 담당 직원이 많이 바빠보이긴 했다.
 
"대충 둘러봐야지. 이것도 데이트로 치고."
 
사 록:어디 뒷골목을 헤매는 것보다야 보기 좋은 로비를 서성대는 것이 더 데이트답기는 했다. 결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앞에 있는 분수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 전에 허리를 쓰다듬는 손을 떼어냈다.
 
"손버릇하고는."
 
가 진:"왜애."
 
곧바로 칭얼대는 목소리가 늘어졌다. 네 뒤를 쫓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분수대가 참 크고, 뭐... 그냥 그랬다. 그리스 풍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대리석인 것 같기도 하고. 왠지 가까이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바닷물을 끌어다 쓴 것 같았다. 바로 옆이 바다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커다랗고 예쁜 게 최고야."
 
분수대의 조형물은 꼭 추상적인 파도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쟁반처럼 생긴 넓은 홈에서 졸졸졸 물이 떨어집니다
 
다시 보니 조형물 중앙의 홈에 동전을 던져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 록:"동전 가진 거 있냐?"
 
물어보자마자 주머니에 작은 동전 하나가 잡혔다. 됐다. 있네. 네 쪽으로 가볍게 손을 저어놓고 동전을 집어던졌다. 들어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얕은 금속음과 함께 동전이 튕겨지고... ... 그대로 분수대 구석에 입수합니다
 
그래요, 이런 날도 있는 법이죠... ...
 
가 진:"야... ... 잘 한다. 잘 하네."
 
구석에 박힌 동전에 대고 박수를 짝짝, 쳤다. 살살 웃는 낯으로 올려다보면 혼내지도 못할 걸 알고서 했다. 오랜만에 바보같은 짓을 봤는데 놀리기라도 해야지, 싶었다.
 
사 록:"조용히 해."
 
머쓱해서 괜히 네 이마를 밀었다.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벽으로 다가갔다. 하나를 가지고 계속 놀릴 애는 아니지만 머쓱한 기분은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다음부턴 가진에게 던지게 해봐야겠다.
 
가 진:"뭐, 아니 잘 한다고 해줘도 뭐라 그러냐."
 
바다로 향하는 벽면 전체가 유리로 처리돼 있었다. 어쩐지 추웠던 바깥이 그대로 보여져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출입문에 있는 회전문이나, 자동문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여닫힐 때마다 한기와 바다 향을 실어줘서 더 그랬다. 괜히 손으로 벽면을 만지니 지문이 남았다. 아차... ... .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 어라? 그러고보니 유리벽의 표면에 음각으로 세공된 물결 무늬가 보입니다
 
아니, 물결 무늬가 아닌가? 긴가민가한데... ...
 
꼭 해양 생물의 모습을 새겨넣은 것 같기도 합니다
 
착각이겠죠?
 
사 록:유리벽에 뭘 새기려면 꽤 힘들었겠다. 진이 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교훈을 얻은 덕분에 벽을 만져 지문을 남기지는 않았다. 뭔가 새겨져 있으면 청소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청소의 난이도보다 인테리어가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별 의미는 두지 않은 채로 엘리베이터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승강기입니다
 
엘리베이터 측면에 리조트 층별 안내도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풍선 (GM):B1 푸드코트&식당, 편의점, 베이커리 및 버블티 전문점
 
1F 로비, 카페
 
2F 노래방, PC&게임장, 볼링장, 당구장
 
 
풍선 (GM):3F 스파,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의무실
 
4~10F 객실
 
11F 스카이라운지
라고 합니다 ' `)9
 
그릇:와-우
 
가 진:대충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기는 걸 보니 할 게 없는 건 확실했다. 괜히 저 구석에 카페가 눈에 띄어서 곧 데리고 갈 참이었다. 라운지 쪽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 보다야 카페 안이 더 나을 것 같긴 했으니까. 한 구석에 목이 마르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보호자도 보였다. 애들은 곧잘 칭얼대곤 하니까, 뭐.
 
"야, 뭐라도 마실래?"
 
사 록:"어? 그래."
 
그러고보니 구석에 카페가 있었다. 시간 죽이기에는 카페만한 것이 없는 법이니까. 목은 딱히 마르지 않았지만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 진:"할 것도 없으니까... 대충 뭐라도 시키고 있으면 다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안 간다고 해도 데리고 가려고 했어. 말하며 낑낑, 네 팔을 잡아 끌었다. 간소하고 아담한 카페가 역시 세를 내서 쓰고 있나, 싶었다. 점심의 겨울 햇살이 카페로 드리웠다. 카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카페 직원: "어서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청량한 직원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반깁니다
 
짭짤한 바다향과 더불어 고소하고 쌉쌀한 원두 냄새가 사뭇 조화롭게 뒤섞여 있군요
 
메뉴는 여느 카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입니다
 
아메리카노, 각종 라떼류, 모카, 프라푸치노, 과일차 등등
 
쇼케이스 안의 조각 케이크와 스콘, 쿠키, 베이글 정도의 디저트도 보입니다
 
사 록:메뉴판을 훑어내리는 눈이 바빴다. 사실 카페에 관한 것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라 일단 머리부터 지끈거렸다. 이럴 때는 제일 무난한 것을 꼽는 것이 무난했다.
 
"난 아메리카노 먹을래. 너는?"
 
가 진:"어... ... 나는 딸기 라떼 먹을래. 너 뭐, 시원한 거? 난 시원한 거. 얼어 죽어도 아이스."
 
메뉴판에 시선을 두곤 중얼댔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으므로 쇼케이스는 둘러보고 싶지 않았다. 괜히 딸기 케이크 같은 게 있으면 먹고 싶어질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요즘 너무 무분별하게 우걱우걱 먹고 있어서 역시 당도가 높은 건 경계해야 했다.
 
사 록:그럴 줄 알았어. 딸기나 딸기 비슷한 거라도 먹을 줄 알았다. 알고 지낸 세월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못 알아차리는 놈이 한심한 건데 그거 하나 맞췄다고 괜히 기분이 괜찮아졌다. 아까 동전 못 넣은 값은 한 셈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차가운 딸기 라떼를 주문하고 부담없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찬찬히 훑었다.
 
주문하고 가만히 기다리자면 창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려옵니다
 
사 록: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간 많이 남는데 한 잔 더 시킬까?"
 
"난 됐어. 그보다 오늘따라 조금 많이 마시는 거 아냐? 그러다 저녁 못 먹고 남긴다?"
 
"그건 그런데... ... 오늘따라 목이 좀 마르네. 점심을 짜게 먹었나?"
 
잔잔한 소음같은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귀를 스쳐 지나가고... ... 얼마 있지 않아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카페 직원: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딸기 라떼 한 잔 나왔습니다~"
직원은 픽업 카운터를 통해 음료를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시럽은 우측 카운터에, 스트로우와 티슈도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요."
 
직원은 이후에 감사 인사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한 직원인 듯 합니다
 

가 진:직원에게 같이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함과 동시에 스트로우를 두 개 꺼내 하나씩 꽂았다.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한 손에는 딸기 라떼를 들곤 쫍 라떼를 빨아들였다. 역시 맛있었다. 한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를 네게 내밀었다.

 
"벌써 시간이 거의 사십 분인데 처리 안 됐으려나?"
 
고개를 귀엽게 갸웃, 한 번 기울였다.
 
사 록:"그러게. 한 번 가서 기웃대볼까?"
 
커피를 생각 없이 입 안에 집어넣었다. 으, 뜨거워. 꽤 심각해보이는 얼굴이 되었겠지만 입천장을 데었을 뿐이었다. 뭘 먹을 때 조심해야지. 생각해놓고 까먹을 게 분명했다. 그럼 굳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카운터 쪽으로 가보는 것이 먼저였다.
 
가 진:"그치. 됐겠지?"
 
괜히 뜨거운 걸 잘못 먹었다 험한 인상이 된 네 볼을 만지작댔다. 불퉁해진 얼굴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뜨거운 건 좀 조심해. 괜히 손끝으로 입술을 꾹, 눌러놓곤 중얼댔다. 잠시 음료수를 가지러 가느라 떨어졌던 손을 다시금 맞잡았다.
 
[ PM 14:38 ]
 
직원: "가 진 님, 체크인 도와드리겠습니다."
 
때마침 담당 프론트 직원이 두 사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사 록: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직원: "오래 기다리셨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에서 기존에 고객님께서 예약해주셨던 객실보다 한 등급 더 높은 프리미엄 객실로 무상 업그레이드를 해드렸습니다."
"금일 12월 28일 정상적으로 체크인 되셨어요. 체크아웃은 12월 30일 정오까지 마쳐주셔야 하며, 1시간이 초과될 때마다 추가 요금이 합산됩니다. 오후 3시 이후부터는 1박 가격이 추가적으로 부과되오니 유의해주세요."
"모닝콜 및 룸서비스는 객실 내 배치되어 있는 로비폰을 사용해주시면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부디 즐거운 일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군요!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혹시나 이용 가능한 객실이 없을까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니,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짧은 안내 멘트를 끝마친 직원은 리조트 팸플릿과 함께 객실의 열쇠를 건네줍니다
 
리조트 폰테르고Pintergo
 
리조트 소개, 객실 안내, 각종 부대시설 소개와 이벤트 목록이 기재되어 있는 팸플릿입니다
 
맨 뒷면에는 쿠폰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 별안간 흰 손이 휙, 손에 들려 있던 팸플릿을 쏙 빼갑니다
 
맹랑한 애인의 짓임이 분명합니다, 뭐... ... 더 읽어봤자 특별한 것은 없겠죠
 
파도 모양의 키링과 카드키가 부착되어 있는 객실 전용 열쇠가 손에서 짤랑댑니다
 
어디보자, 객실은... ... 4011호군요
 
로비 측면에 자리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객실로 이동합니다
 
엘리베이터 역시 천장이 높고 시야가 개방되어 있어 바다의 전경이 너르게 드러납니다
 
이 리조트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투숙객의 눈에 '바다를 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매기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방에 몸을 들이기 무섭게 인위적이지 않은 바다 특유의 소금내와, 기분이 좋아지는 시원달달한 향기를 맡습니다

 
신발장을 지나쳐 객실 안쪽으로 들어서면 거실 한 구석에 두 사람의 캐리어가 놓여 있어요
 
체크인 전에 데스크에 맡겨 두었으니, 친절한 이곳의 직원이 옮겨 놓은 모양입니다
 
인테리어 대부분이 대리석이거나, 우드입니다
 
정성껏 꾸며진 태가 나서일까요? 차갑고 건조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야외 테라스로 향하는 거실 한 쪽은 베란다가 통으로 트여 있어 넘실대는 겨울 바다가 코앞에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너머로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피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세심하네요
 
아일랜드 형식의 주방과, 중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배치된 킹 사이즈의 침대, 한 구석에는 화장대나 욕실 또한 빠짐없이 존재합니다
 
사 록:방에 들어가면 쉬자고는 했지만 바로 쉬자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테라스로 나가 바깥을 구경했다. 바닷가 특유의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베란다의 유리는 어찌나 깨끗이 닦여 있는지 조심하지 않으면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투명합니다
 
양 옆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쉬폰 커튼이 묶여 있습니다
 
테라스의 문을 열면 훅, 비린내가 꽝꽝 얼어붙은 바닷바람이 이제야 간신히 녹기 시작한 피부를 할퀴고 지나갑니다
 
무시무시한 냉기의 기세에 절로 온 몸이 움츠러드는군요... ...
 
문득 커피 테이블 쪽으로 시선이 닿습니다
 
아무래도 이 날씨에 테라스에서 바다의 정경을 감상하며 간식이나 술을 먹기는 무리가 있겠죠... ...
 
가 진:주섬주섬 몸 위로 쌓인 옷을 벗고 있다보니 문득 냉기가 느껴지기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 날씨에 테라스를 여는 미친 놈이 내 옆에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 머... ...
 
"멍청아! 개추워 미친 놈아!"
 
사 록:"아. 미안. 너 있는 거 까먹었다."
 
정확히는 네가 추위 타는 걸 까먹었다, 겠지만 그다지 중요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바람 시원하지 않냐? 괜히 욕을 한 바가지 더 얻어먹을 법한 소리나 하며 문을 닫았다. 테라스는 더 구경할 것도 없을 것 같아 주방이나 기웃댔다.
 
가 진:"야! 너는... ... 너는 진짜... ..."
 
나빴다... ... . 결국 칭얼대듯 나온 말이었다. 분명 내가 추위 타는 걸 까먹었겠지. 입술을 댓발 내밀곤 쿵쿵 다가가서 눈을 치켜떴다. 팔짱도 끼고 발끝도 탁탁댔다. 일단... ...
 
"일단 잠바 좀 벗어라. 답답하다."
 
세련된 아일랜드 형식의 주방으로, 취사도구가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테이블은 두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커보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은 사이즈의 냉정고도 눈에 띕니다
 
물기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 된 조리대는 두 사람이 함께 요리를 하기에 그 공간이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여느 호텔이나 리조트가 그러하듯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이 놓여 있어요
 
시간이 남는다면 밤중에 간단한 간식거리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겠죠
 
사 록:"미안 미안."
 
영혼 없어보이는 말투지만 정말 영혼이 없었다. 겉옷을 벗어 근처의 아무데나 얹어뒀다. 주방도 예쁘긴 하네. 큰 감상 없이 넘기며 침대 쪽으로 갔다. 가는 김에 네 머리에 대꾸와 비슷하게 영혼 없는 입맞춤도 해줬다. 이 정도면 까먹은 값 했나.
 
가 진:근처에 아무데나 놓은 잠바를 집어 들었다. 이런 걸 아무데나 던져놓고 다니니까 집안 꼴이 그렇지. 꿍얼대려고 입을 여는 순간 머리카락에 입술이 닿았다. 이런 거로 봐줄 줄 알았다면... ... 아주 큰 오예였다.
 
"맨날 이런 거로 넘어가지."
 
함께 자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침대입니다
 
이불이 성심성의껏 정돈 되어 있네요
 
토퍼가 따로 깔려 있지 않은데도 눌러보면 놀랄만큼 푹신푹신합니다
 
침대 바로 옆에 위치한 협탁에는 스탠드와 로비폰, 객실용 전화기 등이 구비 되어 있습니다
 
사 록:침대가 푹신해보여서 기분이 조금 더 좋아졌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충분히 만족한 얼굴이 됐다. 만족한 김에 몸을 숙여 네 어깨에 머리를 부비적댔다.
 
"이런 거로 넘어가지 마?"
 
넘어가줄거면서 말이 많다, 는 속뜻이 있었지만 말 하지 않아도 알만한 애니까. 착한 척은 대충 1절로 마무리 짓고 방 탐색이나 계속 하기로 했다. 아까 저 쪽에 화장대가 있었나.
 
나무로 제작된 흰색 계통의 화장대로, 서랍 두 개가 붙어 있습니다
 
원한다면 드라이기나 빗, 스킨, 로션, 코롱, 티슈 따위의 전자제품과 기초화장품, 위생 용품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랍 중 하나를 열면 가지런히 접힌 샤워가운 두 벌이 있습니다
 
가 진:슥슥, 머리를 어깨에 부비고 떠나가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도도한 척 하는 개새끼 꼴이었다. 아니 저렇게 하면 내가 귀여워해줄 줄 알지, 쟤는. 진짜 존나 완전 귀여워해줄 건데. 다짐하며 작은 냉장고를 뒤졌다. 맥주 몇 캔, 500ml 생수 몇 벙인가가 채워져 있었다. 생수 한 병을 까드득, 돌려 땄다. 목이 마른 것 같았다. 세 모금 정도를 홀짝이다 다시 넣어뒀다. 이제는 귀여워해주러 갈 차례였다. 네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사 록:"야! 머리!"
 
헝클어지면 어떡해! 놀라서 뒷목에 소름이 돋은 것은 둘째치고 머리가 흐트러질 것이 더 걱정이었다. 쟤는 머리까지 손 올리기도 힘들텐데 왜 머리를 쓰다듬고 그런대. 반항할 마음은 있었지만 몸이 굳어버려서 망했다. 몸을 낮춰 얌전히 쓰다듬이나 받는 수 말곤 없었다. 에휴.
 
가 진:"헝클어지라고 하는 건데 안 헝클어지면 좀 섭섭한데."
 
말하며 자연스럽게 낮아진 얼굴을 텁, 붙잡고 입술을 부볐다. 요 귀엽고 고얀 놈.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이 가벼웠다. 헝클어트린 머리를 답잖게 상냥한 손길로 다시 만져줬다. 힘내서 넘기고 온 머리를 내가 다 망쳐놓을 순 없지, 싶어서 그랬다. 뭐 어떻게 어디에 내놔도 예뻐 죽겠지만서도.
 
"어휴, 귀여운 놈. 이걸 어떻게 하냐."
 
사 록:눈을 감았다가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떴다. 얘는 뭐 이런 걸 물 흐르듯이… 이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닌데 겪을 때마다 어쩔 줄 모른다는 점이 짜증났다. 다시 얼굴이 구겨졌다. 머리를 만져주는 동안에도 짜증난 표정 그대로 눈 앞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떡하긴. 알아서 잘 하잖아."
 
가 진:"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알아서 잘 해먹겠지, 뭐."
 
대충 대꾸하며 손끝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거 자꾸 하고 있으면 주름 진대. 중얼대다 웃었다. 뭐 그래봤자 예쁜 건 예쁜 거지만, 뒷말을 붙이려다 도망갈 것 같아서 참았다. 내 참을성에 홀로 박수를 보냈다.
 
띵동!
 
둘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쯤 인터폰이 울립니다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면 당연하게도 일면식 없는 젊은 남성이 서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야 이 리조트의 직원은 아닌 듯 합니다
 
사 록:어설프게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문을 열러갔다. 직원도 아닌데 누군가 찾아올 일이 있나 싶었지만 아예 일이 없다면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름의 복잡한 사고 후에 결정한 일이었다. 문을 반쯤 열었다.
 
"누구세요?"
 
???: "실례합니다, 저는 옆 객실의 투숙객인데요... ..."
 
옆 객실의 투숙객: "혹시 일곱 살 정도 되는 어린 여자 아이를 못 보셨나요?"
"제 딸아이인데, 편의점에 다녀온다고 하길래 보냈더니... ... 세 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질 않고 있어서요."
"키는 이만하고... ... 머리를 양 옆으로 땋아서 묶고 있어요. 눈이 동글동글하고 푸른 계열의 겨울용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투숙객은 키를 이야기 할 때 쯤 허리춤 아래 쪽으로 손짓했다. 잔뜩 울상인 얼굴이 마지막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리조트 측에 사정을 설명하기는 했는데... ...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에는 걱정이 되어서 이곳 저곳에 물어보고 있어요. 말이 끝난 이후에 미세하게 처진 어깨가 떨렸다.
 
가 진:"죄송해요. 저희도 아까 방금 들어와서 전혀 못 봤어요."
 
처진 눈썹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하기도 했고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흉흉한 세상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이러다 우리 애도 어디 나가서 없어지고 그러는 거 아냐? 괜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진지했다. 말을 건네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남자가 몸을 돌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뒤를 도는 남자가 복도 뒤로 사라졌다. 아,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 . 작은 혼잣말이 끝에 남았다.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인 것 같기도 하고... ...
 
겨울 바람을 너무 오래 맞았던가요?
 
어쩐지 생각 회로가 느릿느릿 돌아갑니다
 
사 록:"애 없어져서 어떡하냐."
 
문을 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애들은 혼자 내보내고 그러면 안돼. 너도 조심해. 네 팔을 잡았다. 지금 당장 어딜 가지야 않겠지만 역시 애는 애니까. 크기로 보나 뭐로 보나 일단. 아무도 일깨워주지 않은 경각심을 살짝 가져보기로 했다.
 
가 진:"야, 내가 널 두고 어딜 나가. 미쳤어?"
 
난 너 걱정돼서 그렇게 못해. 웃으면서 손을 뻗어 볼따구를 쭉, 늘어트렸다. 음. 역시 귀엽군. 같은 생각을 반쯤 했다. 뒤숭숭한 마음을 좀 가라앉히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말랑하고 색이 있는 판판한 볼.
 
사 록:"그럼 다행이고."
 
볼이 잡힌 상태라 막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얌전히 있다 네 허리에 팔을 감아 그대로 들어올렸다. 너를 침대에 앉히고 그 옆에 얌전히 앉았다. 다리 아프다며. 뻔뻔한 변명도 추가했다.
 
가 진:갑자기 몸을 훅, 드는 것에 대롱 매달린 채로 가볍게 침대에 안착했다. 키나 완력이 없는 게 이럴 때 조금... ... 서러웠다. 생각해보니 다리도 아팠다. 다리를 쭉 뻗고는 통통 두드렸다. 괜히 할 게 없어서 아까 가져왔던 팜플렛을 잡아 들곤 대충 휙, 휙 넘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려면 휙휙 넘기려고 했다.
 
"야. 이거 좀 봐라."
 
팜플렛 사이에 끼워져 있던 리조트 내 이벤트 페이지를 펼쳐 네 눈앞에 들이밀었다.
 
세상에! 이 리조트의 최상층인 스카이 라운지에서 특별한 칵테일의 무료 시음회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네요
 
딱 날짜가 맞아 떨어지는데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것도 우연인데... ... 한 번 가볼까요?
 
사 록:"갈까? 할 것도 없고."
 
우연히 저런 걸 하고 있으면 한 번 쯤 들러주는 것이 손님된 도리지. 그냥 필요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다리는 괜찮아? 업어줘?"
 
가 진:"어엉... ... 쫌 아픈데 어차피 가서 앉아 있을 거니까. 그정돈 괜찮을 것 같은데."
 
업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분명 사람들 눈에 나쁠 거라고 생각했다. 덩치도 산만한 것들끼리. 아니, 정정하자면... ... 그래. 덩치도 산만한 거 하나랑 그냥 하나가 말이다. 내가 애도 아니고. 생각하며 읏쌰, 몸을 일으켰다. 먼저 옷을 꿰어 입어야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입을 옷의 가짓수도 많았다.
 
사 록:앉은 채로 옷을 열심히 입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추위 잘 타는 애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반, 저대로 굴리면 굴러가나 하는 호기심 반이었다. 두꺼운 코트 하나만 덜렁 챙기고 하는 생각으로 아주 적절했다. 얼추 옷을 다 입었나 싶어 일어났다.
 
"가자."
 
가 진: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응, 인지 어엉, 인지 모를 중간 언어를 내뱉으며 다리를 휘적였다. 너는 그렇게 입고도 안 춥냐. 물으며 턱, 문을 열었다. 뒤따라 네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문이 닫혔다. 그리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울리는 안내 방송.
 
[ 리조트 폰테르고에서 안내 방송 드립니다.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머리를 양 옆으로 땋아 묶고,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아이를 보호하고 계신 투숙객 분께서는 1층 안내데스크로 찾아 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방송 드립니다... ...]
 
사 록:저런. 애 못 찾았나보네. 안쓰러운 마음을 잠시 한... 삼 초 가졌다. 네게 손을 내밀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걸어올라가려면 정말로 얘를 안든가 업든가 해서 데려가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틀린 생각이 아닐테니까.
 
"야, 걱정이 많겠다 진짜. 어서 찾았으면 좋겠는데."
 
가 진:
널 따라 가며 안내 방송에 몸서리쳤다. 하여튼 정말 뒤숭숭한 세상이다. 슬쩍 가서 슬쩍 네 손을 잡으며 슬쩍 한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다 곧 사층에서 멈췄다. 얌전히 엘리베이터에 타서 10층을 눌렀다. 아까 스카이 라운진가 뭔가가 10층이라고 했던 거 같았다. 역시 좀 답답하니까 라운지 들어가면 잠바 한 겹을 벗어야지, 생각했다.
 
사 록:몇 층이었는지 기억을 되새기기 전에 미리 버튼이 눌려있었다. 장한 것. 네 손을 꾹 잡았다. 다른 손으론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노란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다 잠시 잡생각을 했다.
 
"나도 다음에 염색이나 할까."
 
가 진:칭,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염색? 무슨 색 하게. 묻는 목소리가 편했다. 생각해보니 이것저것 옅은 색도 분명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너도 이 색 할래? 농담삼아 대충 말을 던지며 살살 웃었다. 커플 머리 같은 거 있잖냐. 귀엽지 않아?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라운지 출입문 앞에 서자 지이잉, 깨끗이 닦인 자동문이 슬슬 열렸다.
 
라운지에 들어서면 비수기임에도 연말인지라 사람이 꽤 몰려 있습니다
 
라운지는 둥근 원형 모양입니다
 
때문에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먹먹한 겨울 하늘이 시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서로의 깊이를 마주 반사하듯, 하늘과 바다가 이어진 절경이 황홀의 극치입니다
 
그 중앙에 마찬가지로 둥근 형식의 카운터 겸 바가 놓여 있습니다
 
유니폼을 차려 입은 바텐더 두 명이 손을 바삐 움직여 음료를 제조하고 있네요
 
어디 앉으면 좋을지 자리를 물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라운지 한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리조트 직원 한 명이 두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라운지 직원: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 록:같은 색... 입 안으로 웅얼거리다 보니 눈 앞에 직원이 있었다. 잠시 머리가 멈췄다. 덕분에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팜플렛을 꺼내보여줬다. 최대한 담담해보이고 싶었는데 제대로 됐을지는 미지수였다. 나중에 가진이 귀여워하면 누가 봐도 당황했던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얌전히 직원의 안내를 기다렸다.
 
당신이 팜플렛을 보여주자 직원은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창가쪽 테이블로 안내합니다
 
라운지 직원: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친절히 양해를 구한 직원은 테이블을 떠나기 전, 본 칵테일 시음회가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으며 운이 좋으면 여덟 시간 코스의 크루즈 무료 승선권을 얻을 기회도 잡을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멘트도 잊지 않습니다
 
가 진:바다가 보이고, 바깥이 예쁘고 한 건 딱히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다고 하기엔 퍽 예쁘기야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멍청하고 귀여운 애인이란 놈한테 더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니 당황해서 어물쩍 거리던 폼하고는. 귀여워서 까딱하면 제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뭐, 과장이 조금 섞이기야 했다만.
 
"그래서 역시 같은 색?"
 
사 록:"안 어울릴 것 같아."
 
머리 색이 검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물론 대충 어떤 색이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은 여러 사람에게서 들어봤지만 또 경우가 다르니까. 테이블을 토도독, 톡, 토독 두드리다 한숨 쉬었다.
 
"같은 색 머리는 너무... 그거 뭐냐? 간지러워."
 
가 진:"안 어울릴 것 같아?"
 
네 말에 반문하며 그대로 네게 시선을 고정했다. 흠, 저 머리카락이 금발로 덮여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예쁜 본판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다 한숨에 눈을 깜빡였다. 간지러워. 머쓱하게 나온 목소리가 너무 귀여웠다. 아니 저걸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붓지는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부끄럽다는 거지 그거?"
 

미친 놈 귀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 ... . 목소리에 웃음이 가득했다.

 
사 록:웃음 소리가 들리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웃지마라. 목소리가 튀거나 뭐 그런걸 막으려고 이를 악물었더니 발음이 뭉개졌다. 득도 실도 없는 행동이었다. 따지고 보면 실 뿐이지. 이를 무느라 턱이 아팠으니까. 적어도 쟤한테 빨개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손으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랬다.
 
"부끄럽다기 보다는... 그거지... 그, 그거."
 
가 진:"그래, 부끄러운 거지. 알지, 알지."
 
분명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고 손을 올린 걸텐데, 귀까지 가릴 순 없을테니까. 마음 놓고 귀여운 여기 저기를 감상했다. 쟤도 언제까지 손을 올리고 있을 수만은 없을테니까. 꼭 노란 색으로 염색을 해줘야지, 같은 생각을 하며 웃음을 차근히 멈췄다. 더 웃으면 정말 화낼 지도 몰랐다.
 
그렇게 떠들고 있다보니 직원이 칵테일을 가져다 줍니다
 
짙은 남색의 칵테일 위로 흰색의 크림 소다 층이 얕게 쌓여 흔들립니다
 
마치 파도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쯤... ... 친절한 직원이 설명을 덧붙입니다
 
국내외 최고의 서비스를 책임진다던 팜플렛 속의 포부가 거짓은 아닌 듯 쏟아지는 말들이 청산유수입니다
 
라운지 직원: "보드카 1온즈와 블루 큐라소, 레모네이드를 채워넣은 칵테일에 달콤한 크림 소다를 얹어 겨울 바다의 깊은 맛을 구현했습니다. 오직 저희 스카이 라운지에서만 맛보실 수 있는 특별한 칵테일이랍니다.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벤트 당첨 여부는 글라스를 픽업 카운터에 반납해주실 때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가장 가까운 라운지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설명을 끝마친 직원은 막 스카이 라운지에 들어서는 또 다른 투숙객에게로 이동합니다
 
얼핏 들어서는 평범한 재료로 조합된 드링크가 분명한데, 거창하게 겨울 바다의 깊은 맛을 구현했다는 사족에 관심이 갑니다
 
새하얀 거품같은 소다가 글라스 가장자리를 향해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톡톡 쏘는 것이 아무래도 스파클링 칵테일인 걸까요?
 
상큼한 블루 레모네이드의 향이 앉아있는 데까지 나네요, 레모네이드를 채워 섞었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당신이 칵테일 글라스를 입에 대기도 전에 애인이라는 놈이 먼저 잔을 들어올립니다
 
그대로 입술 너머에 겨울 바다를 닮은 것을 들이키고... ...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7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꿀꺽꿀꺽, 목넘김이 시원해보입니다
 
그런데... ... 무언가 조금, 급하게 마시는 것 같지는 않나요? 목이 말랐던 걸까요?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그래도 저렇게 급히 마시다가는 사래가 들리거나 체하지 않을까요... ...?
 
사 록:"천천히 마셔. 목 말랐어?"
 
칵테일을 마시면 더 갈증이 났던 것 같은데. 기억을 떠올리려다 떠오른 기억이라는 것들이 전부 필름이 끊겨있어 관뒀다. 갈증이 나면 바닷물도 마시는게 인간인데. 그래도 걱정이 되기는 해서 잔 끄트머리를 살살 잡아당겼다. 한 번에 확 털어넣지는 못하도록 막기만 해도 목이 막혀 죽지는 않겠지.
 
가 진:네가 잔을 잡아 당기는 것에 살살 입에서 잔을 뗐다. 으응, 입에 잔존해 있는 마지막 한 입을 목 뒤로 넘기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엉, 그러게. 목 말랐나보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목이 마르네. 대꾸하며 잔을 내려놨다.
 
"너도 마셔라, 이거 달지도 않고 별로 시지도 않네. 끝맛이 좀 짭쪼롬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바다 맛이라는 건가.
 
사 록:잔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애가 너무 서있어서 그런가. 칵테일을 두 모금 정도 넘기고 눈을 깜빡였다. 정말 끝맛이 짠 것 같기도 하고... 생긴 것 같은 맛인가 싶었다.
 
"계속 목 마르면 물이라도 달라고 할까?"
 
가 진:"어... ... 아니, 뭐. 괜찮아. 대충 이거로 된 거 같기도 하고."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원샷을 한 것도 아닌데. 반쯤은 네가 말려줬다지만 하여튼. 결과론적으로 그런 것 아닌가. 하여튼 당당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마시면 되지 뭐. 합리화도 했다. 괜히 웃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도 바람이 추워보였다.
 
사 록:그럼 됐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따라 창 밖을 봤다. 겨울 바다는 다 좋은데 너무 추워보인다는 게 흠이었다. 누구든 들어오면 얼려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았다. 턱을 괴고 앉아서 한 손에 잔을 잡고 손장난을 쳤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션 뷰 아래 해안선을 따라 백사장을 걷는 관광객들이 보이는 군요
 
단조로운만큼 평화롭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저 멀리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엄마 손을 잡고 물가로 이끄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뜯어 말리는 아빠의 모습도 보입니다
 
고생이지 싶어요
 
가 진:"그래도 이왕 바다에 왔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물 속에 들어가는 건 무리겠지?"
 
겨울이니까. 뭔가 아쉽네. 여름에도 올까? 괜한 추파를 던지며 창밖을 향해있던 시선을 돌려 너를 바라봤다. 사실 괜한 추파도 아니었다. 뭣보다 진심이었으니까. 겨울 바다도 예쁘니까 분명 여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수기에 따른 많은 사람이나 뭐, 그런 건 좀 귀찮기야 하겠지만. 괜히 바다에 자꾸 미련이 남았다. 바다보다 중요한 게 앞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 록:"바다가 저기 하나 이 계절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들어가야겠냐?"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고개를 저었다. 여름에도 오자는 말은 좀 좋았다. 굳이 티를 내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취향은 아니었지만 놀러오는 정도는 좋았다. 괜히 네 손을 한 번 잡았다가 놔줬다.
 
가 진:"어엉... ..."
 
그야 그렇지? 대꾸하며 남은 칵테일을 홀짝댔다. 공짜가 다 맛있다는 건 학계의 정설이지, 암암. 다 마신 잔 아래 덜그럭, 하고 푸른색의 원석이 드러났다. 뭔가 오묘하고 예쁜색의 원석이었다.
 
"야, 이게 뭘까?"
 
사 록:"나야 모르지."
 
뭔데? 비어있는 잔 안 쪽을 들여다봤다. 먹을 거에 돌멩이를 집어 넣어놨어, 하는 감상이 먼저 났지만 그대로 말했다간 또 뭐라고 삐약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대충 평범하게 먹혀들어갈만한 말을 했다,
 
"예쁘네."
 
가 진:"예쁘기야 한데."
 
먹을 거에 왜 이런 게 들어있어. 손끝으로 잔을 툭툭, 쳤다. 다른 테이블을 봐도 음료 안에 저런 게 들어 있진 않았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기웃대는 나를 봤는지 직원이 와서는 무언가 필요한 게 있냐며 물어왔다. 거기에 손사래를 치려는 순간,
 
"세상에! 축하합니다~"
... ... 이게 무슨 쌩뚱맞은 소리람?
 
글라스 안의 원석을 확인한 직원이 박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 뒤를 따라 함께 있던 또 다른 직원도 박수를 칩니다
 
듣자하니... ... 크루즈 무료 승선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군요!
 
곧 직원이 티켓을 건넵니다
 
티켓의 뒷면을 살피면 승하선이 가능한 선착장의 위치가 약도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차를 끌고 20분 가량 이동해야 하는 거리네요
 
차가 없는 이용객을 위해 리조트 측에서 셔틀 버스를 운행한다고 하니 그쪽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법 합니다
 
어쩐지 당신의 애인은 눈에 띄게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이런 거에 당첨도 되고 겨울 바다만 내내 보고 가는 것보단 뭐든 낫지 않겠어요?
 
훌륭한 무료 칵테일도 마셨겠다, 더불어 크루즈 승선권도 얻었겠다... ... 수완이 좋습니다
 
사 록:"운이 좋네."
 
티켓을 대충 훑어보고 네게 건넸다. 내가 들고 있다보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겨울이라 바다 한가운데가 꽤 추울 것 같았다. 꽤 옛날의 기억이지만 여름에 배를 타고 나갔을 때 갑판의 날씨가 서늘했던 것도 같았으니까... 알아서 잘 동글동글 챙겨입겠지. 발을 까딱대며 남은 칵테일을 입 안에 모두 집어넣었다. 냠.
 
가 진:"기분 좋네~"
 
활짝 웃는 얼굴이 반짝반짝댔다. 오늘은 역시 운이 좋았다. 사실 크루즈도 뭐도 다 됐고 그냥 같이 놀러 온 상태에서 뭔가 좋은 일도 잔뜩 생기다보니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좋아하는 공짜 술도 먹고, 비싼 크루즈도 공짜로 타고 안 좋은 게 없었다. 마음 같았으면 쟤를 꽉 안고 삼바춤이라도 추고 싶었는데 강제로 그럴 힘은 없었다. 지니는 소시민이니까, 응응.
 
"다 마셨으면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사 록:웃는 얼굴이 귀엽긴 한데 너무 밝아보여서 벌써부터 기가 빨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집어넣고 코트를 정리했다. 끄트머리가 살짝 구겨져서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만져줘야지. 네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살짝 끌어당겼다.
 
"그래. 배고프다."
 
가 진:"점심 먹고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지니 배가 고파요~"
 
반쯤 장난으로 쫑알대며 이끌리는대로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딩이 제일 따뜻하긴 하지만 역시 부피가 컸다. 하지만 그정도는 돼야 혹한기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건 맞으니까... ... 괜히 패딩을 슥슥 여몄다. 나에 비하면 쟤는 진짜 얼어죽을 거 같은데. 괜히 옆에 달라붙어서 팔을 슥슥 문댔다.
 
"넌 얼어 죽겠다, 야."
 
사 록:어, 어. 배가 고파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익숙하게 대꾸했다. 지인들이 들으면 어이없어할지도 모르지만 이전의 연애들과 다른 점은 저 조그만 놈을 너무 잘 안다는 것 말곤 없었다. 사실 조금 덜 알아도 될 것 같은데. 네가 달라붙은 팔을 휘적댔다.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게 즐거웠다.
 
"죽으면 제사 좀."
 
가 진:"미쳤나봐. 그러니까 좀 따뜻하게 다니라고. 이 날씨에 코트가 뭐야, 코트가."
 
타박하며 낭창댔다. 생각해보니 뭐 먹을만한 게 있나 싶었다. 룸서비스를 시키면 되나? 곰곰히 생각해보다 그냥 나가서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선택지가 많아질 수록 어려웠다. 놀러 온 김에 역시 외식을 가야 하나.
 
"근데 뭐 어떻게 할까. 뭐 시켜 먹을래 아님 해먹을래? 나가서 먹는 방법도 있긴 해."
 
사 록:애가 어째 매년 잔소리만 느는 것 같아... 네 입을 막아버릴까 하다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관뒀다. 아예 아무 소리 안 하는 것 보다야 훨씬 낫긴 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조금 무섭거든.
 
"글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난 없어서.
 
가 진:"배는 고프다면서 먹고 싶은 건 없대."
 
나온 김에 외식도 좋을 거 같긴 한데. 말하며 일단 쭉쭉 라운지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이왕 옷도 입고 나왔는데 진짜 확 외식을 해? 생각해보면 어차피 다시 들어가면 나오기 귀찮을 것 같기야 했다.
 
"그럼 나가서 먹을까. 뭐 먹지... ..."
 
사 록:"몰라... 고기?"
 
몰라 뒤에 답을 얹는게 한국인 특징이랬는데 어디 가서 한국인 아닌 척하기엔 글렀다. 응응...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서 구석에 박혔다. 신발 끝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신발도 흠집났네,
 
가 진:엘리베이터에 구겨져서 네 시선을 따라 눈을 내렸다. 야, 너 신발 안 바꿔 신고 나왔냐. 발 안 시려? 근심 걱정이 가득한 눈이 동그래졌다. ㅐ새끼가 진짜... ... 조심 안 하고. 투덜대며 뽀짝뽀짝 네 품에 안겨봤다. 나중에 신발 사러도 가자.
 
"일단 고깃집은 근방에 있었던 거 같은데. 아까 오다 본 거 같엉."
 
사 록:자연스럽게 품에 안기길래 한 팔로 감싸안았다. 안아놓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내가 이거 왜 안아주고 있지?
 
"이거랑 운동화랑 가지고 왔는데 그거 코트랑 안 어울려."
 
아무리 잠시 나간대도 그럴 순 없잖아. 안고 있는 김에 등도 토닥여줬다. 고기나 먹으러 가자.
 
가 진:"얼어 죽어도 패션 챙길 놈이네 아주... ..."
 
실제로도 그렇기야 했지만. 네 말에 대충 어엉, 인지 엉, 인지 뭔지 모를 대답을 내어놓곤 슥슥 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봤다. 혼나기 전에 빼면 되지, 같은 안일한 생각도 같이 했다. 한 번쯤 쪼물딱 했더니 딱 맞게도 엘리베이터가 섰다. 모른 척 손을 살살 빼곤 애를 끌어 당겼다.
 
"가자, 가자~"
 
사 록:방금 나 뭘 당한 거지. 너무 순식간이라 타박할 타이밍도 놓쳤다. 옷도 가볍다곤 하지만 쟤에 비해 가벼운 거고 꽤 단단하게 입었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화낼 의지도 없어졌다. 끌어 당기는 대로 끌려가며 허망하게 웃었다.
 
"넌... 너... 재능 있어."
 
가 진:"칭찬 고맙다. 내 재능에 네가 일조를 좀 했지."
 
대충 대꾸하며 리조트 바깥으로 나왔다. 역시 살을 에는 추위가... ... 아니, 패딩을 에는 추위가 살벌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으니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주변을 휙휙 돌아보니 역시 봐뒀던 고깃집이 있길래 다시금 너를 쭈욱 잡아 당겼다. 고깃집이라고 하기엔 뭐, 좀 비싸보이긴 했다. 적어도 내가 구워 먹는 고깃집은 아닌 거 같았다. 이런 데에 있는 곳이면 뭐, 당연히 그러려나.
 
사 록:제법 가까이에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비싸보이기야 했지만. 뭐,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고마워 하라야!) 손 끝에 슬슬 감각이 사라지길래 너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진이 얼어죽을라.
 
가 진:외관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애가 날 데리고 들어가길래 조금 웃었다. 지금 나 추위 많이 탄다고 이러는 거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귀여운 새끼였다. 나중에 꼭 볼따구를 씹어줘야지. 이상한 생각을 했다. 고깃집에 들어가자 말자 우렁차게 안녕하세요! 하고 환영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앉아 대충 주문을 하고, 대충 물을 홀짝댔다.
 
"밥 다 먹고 뭐하지... ..."
 
사 록:"뭐하지? 잘까."
 
평소보다 이동량이 많았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신발도 바다에 빠졌고 방도 잠시 잃었고... 칵테일도 마셨고. 생각보다 알찬 하루였네.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아, 기대자마자 구겨진 코트 생각이 나서 옆에 곱게 벗어뒀다. 더 구겨질라.
 
가 진:"그러게... ... 아 근데 놀러 온 김에 좀 더 놀다 자고 싶은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귀여운 짓은 사실 반쯤 습관이었다. 고민하던 중 직원이 고기를 가지고 오며 테이블 위로 스파클라 몇 개를 놓았다. 이건 또 뭔 일이람. 고개를 쭉 올려 직원을 바라보자 직원이 환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어쩐지 데쟈뷰가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한데... ...
 
직원은 두 분 이상이서 오신 손님들에게는 밤바다를 위한 스파클라를 지급해드리고 있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가 진:
rolling 1d5+1
 
(
4
 
)
+1
 
 
=
5
 
테이블에 올려진 스파클라의 수는 세상에, 다섯 개나 되네요!
 
직원은 할 말을 끝내고는 고기를 슥슥, 불판 위에 올려놓고 굽기 시작합니다
 
냄새가 좋군요
 
사 록:"할 일 생겼네."
 
하고 웃었다. 겨울 밤 바다에서 저런 거 들고 휘적대다보면 참 낭만적이겠다. 그니까...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다. 고기 냄새는 늘 좋았다. 먹을 것 냄새를 맡으니 배가 더 고파졌다. 저도 모르게 눈썹이 팔자가 됐다.
 
가 진:"... ... 어어, 그러게. 할 일이 생겨버렸네... ..."
 
할 말만 하고 고기만 굽고 직원은 쏙 사라져버렸다. 아니... ...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대충 젓가락으로 고기를 몇 점 앞접시에 나눠 담았다. 불판 위에 계속 올려두면 뜨거울테니까. 어쩐지 울상이 된 얼굴 앞에 고기를 턱, 집어 들이댔다.
 
"우리 애기 많이 드세용~"
 
사 록:"애기는 무슨."
 
투덜대긴 했지만 입 안에 고기가 들어오니 표정이 밝아졌다. 네가 꺼내둔 고기를 집어먹었다. 사람은 육식을 하고 살아야해. 전혀 근거 없는 말을 중얼댔다. 어릴 때도 쟤랑 고기를 참 많이 먹었던 것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애 얼굴을 뜯어보다 혼자 흐음, 숨을 푹 내쉬었다.
 
"시비 거는 건 아닌데, 넌 언제 커?"
 
가 진:세상에서 육식이 제일 좋지, 응응. 중얼대며 열심히 불판에서 고기를 옮길 때 쯤이면, 또 직원이 와서 고기를 구웠다. 직원과 참 합이 잘 맞는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옮겨둔 고기를 입에 쑤셔넣었다. 고기는 역시 맛있지, 응응.
 
"시비거는 건 아닌데, 넌 언제 죽냐?"
 
사 록:아무튼 한 마디를 안 져. 별 유감 없이 배나 채웠다.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화를 내는 옹졸한 인간도 아니니까. 하지만 괜히 괴롭히고 싶어져서 네 입 앞에 고기를 가져다 들이밀었다.
 
"진. 아 해."
 
가 진:"엉?"
 
앞에 들이밀어진 고기를 한 번, 판판한 네 얼굴을 한 번. 번갈아보다 웃으며 입을 아~ 하고 벌렸다. 눈도 감아줬다. 이런 짓을 잘 해주는 놈은 아니었는데,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땡 잡았다. 하여튼 집밖에 나가면 다 개고생이라던데 왜 난 기분이 좋지. 노래라도 흥얼대고 싶은 마음이 쑥숙 자라났다.
 
사 록:순순한 꼴을 보니 또 괜히 심기가 뒤틀렸다. 이런 마음가짐은 좋지 못하니까 빨리 수습하기로 했다. 입 안 깊숙히 고기를 쿡 집어넣고 젓가락을 뺐다.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멀쩡하면 다시 속이 뒤틀릴지도 몰랐지만 그건 만일의 일이고...
 
"많이 먹어야 쑥쑥 크지."
 
가 진:일단 고기를 먹여줬다는 거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은 탓에 시비 거는 말은 뭐, 삼키기로 했다. 대충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뭐, 내가 안 큰 건 맞으니까. 어릴 때부터 많이 안 먹어서 그런가. 생각했더니 배가 부른 거 같기도 했다. 그래도 반 정도는 내가 먹은 거 같으니까 괜찮지 않나? 생각하다 아닌가... ... 내 식습관을 되돌아봤다. 에이, 뭐. 터질 때까지 먹지 뭐. 웅얼웅얼, 너두우 마니 머거랑. 쑥쑥 크구. 입안 가득 고기가 들어차서 소리가 오므라들었다.
 
사 록:"더 커도 되는 거였어?"
 
진즉 말해주지. 목 부러질까봐 적당히 컸더니. 피식하고 웃음이 샜다. 저러니 미워할 수가 없지, 응응... 먹을 걸 대충 다 비우고 몸을 의자에 기댔다. 딱 밤바람을 쐬고 나면 가실만한 졸음이 밀려왔다.
 
가 진:"나는 길고 예쁜 게 취향이니까."
 
물론 너였으면 키가 나랑 똑같았어도 좋아했을 거야. 조곤조곤 얘기했다. 기분은 떴지만 덕택에 말투가 가라앉았다. 로맨틱, 성공적. 뭐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람이 너라서 취향이 이렇게 됐다는 말은 평생 안 해주기로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고 해줄지 말지 결정해야지.
 
"나갈래?"
 
사 록:"어... 좋아해주는 건 고마운데 목소리 좀..."
 
어떻게 해봐라... 앞에서 보고 있는 게 가진만 아니었어도 머리를 잡고 무너졌을거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고 눈을 내리깔았다. 바른 자세로 앉은 꼴이 되었으니 나쁘진 않았다. 생각보다 실내가 더웠는지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나가자. 덥다."
 
가 진:어쩐지 붕붕 떠서 종알대는 것보다 차분히 얘기하는 게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은 걸 놀리려다 말았다. 더운 탓으로 쳐줘야지. 나는 마음이 넓으니까. 응응.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옷을 대충 껴입으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귀마개를 챙겨올 걸, 생각했다.
 
"커플로 보이겠지?"
 
사 록:뭐가? 겉옷을 입다가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뜬금없는 놈. 평소같았으면 그냥 어어 그래 하고 넘겼을만한 물음이었는데 아까 그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심술을 조금 부렸다.
 
"아니. 동생 데리고 놀러온 형 같겠지."
 
가 진:"죽고 싶냐?"
 
괜히 눈을 날카롭게 하고 널 째려봤다. 동생이라니! 누가봐서 동생이야. 동생이 맞긴 하지만. 꿍얼대며 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대 위로 올려뒀다. (고마워요, 사하라!) 계산대로 오기 전에 챙겨둔 스파클러를 흔들댔다. 뭐, 여하튼 기분은 좋았으니 더 말을 얹진 않기로 했다.
 
사 록:째려보길래 웃어줬다. 웃으면 꽤 순해보이는 얼굴이라던데. 누구는 안 웃어도 충분히 순하다고 했었고. 누구 말이 맞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주머니에서 뱀 빠져나가듯 빠져나간 카드를 봤다. 자기가 쓰지도 않은 돈이 빠져나가는데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삶은 어떤 걸까... 평생 돈을 빠져나가게 하는 사람으로 살 입장이라 평생 모를 느낌이었다. 뭐. 둘 다 좋기야 하겠다. 고양이를 습관적으로 쓰다듬듯이 가진을 쓰다듬었다. 쓰담쓰담.
 
가 진:머리카락을 헤집는 손길이 느껴져서 발끝을 올려 손에 머리카락을 마음껏 부볐다. 그리곤 척척 먼저 앞장을 섰다. 물론 문을 열자 말자 추운 탓에 다시 닫기야 했지만. 그정도는 귀엽게 봐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금 문을 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니 그래도 좀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바로 앞이 바다니까, 얼마 나가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아침보다 밤바다가 더 좋은 것 같아. 중얼댔다.
 
[ PM 20:56 ]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파도 소리는 아침에 들었던 것보다 더욱 거셉니다

 
숨을 뱉을 때마다 서리가 낀 듯 희뿌연 입김이 퍼졌다 즉시 자취를 감춥니다
 
해가 완전히 진 이래임에도 낮보다 인구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걷기가 조금 수월합니다
 
이 정도 추위라면... ... 당신은 꽤 버틸만 한 것 같은데요?
 
사 록:밤바다는 새까맣고 바람은 열심히 불고 사람들 발소리도 타박타박 들렸다. 분위기 나쁘지 않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걸었다. 아까처럼 바닷물에 발을 넣지 않도록 조심히. 어차피 신발을 소생시키기는 힘들겠지만 아예 망가뜨리고 싶진 않았다.
 
"추우면 코트 벗어줄까?"
 
가 진:"야, 넌 코트 하나밖에 안 입었는데 뭘 벗어주고 말고야. 됐어. 너 입어."
 
말하며 어깨쯤을 툭툭, 쳤다. 그렇게 걱정되면 이거 다 하고 손이나 잡아주든가. 새침하게 답하며 또 한 번 네 주머니 속을 찾았다. 붉은색 라이터를 꺼내 스파클러 하나에 불을 붙이고 네게 건넸다. 받고 멀뚱히 서있는 게 웃겼다. 내 거에도 하나 붙이고... ... 중얼대며 불을 예쁘게 붙였다. 쨍한 주황색의 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 록:어떻게 내 주머니에서 나보다 더 물건을 잘 찾는거지? 주머니를 더듬거려봤지만 뭐가 들어있는지는 둘째치고 뭐가 들어있긴 한건지도 구분이 안 갔다. 여튼 신기한 놈... 스파클러를 건네받고 허공에 휘적휘적 흔들었다. 불꽃이 정신없이 튀기는 와중에 까만 하늘이 조금 예뻤다.
 
"예쁘네..."
 
몸을 태우기 시작한 스파클러의 빛이 꼭 잘게 부서지는 별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모래사장 도처에 두 사람과 같은 스파클러를 가지고 불꽃놀이를 즐기거나, 이따금 허공에 싸구려 폭죽을 쏘아 올리는 무리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부서지는 파도에 녹는 모래, 떠내려가는 조개껍질의 무덤

 
어쩐지 마음이 더없이 가볍습니다
 
무언가를 훌훌 털어낸 것처럼... ...
 
가끔 이렇게 여행을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할 때쯤... ...
 
가 진:"그래, 예쁘지."
 
쏟아지는 저온의 불빛을 받아내며 당신의 애인이 읖조립니다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피곤한 걸까요?
 
음성의 높낮이가 조금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데... ...
 
어쩌면 이 추위에 목소리가 얼어붙은 걸지도 몰라요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시보니 스파클러를 보고 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시선은 저 너머 넘실대는 겨울 밤바다에 고정되어 있네요
 
그래요, 당신은 그의 눈이 꽤 오래 전부터 그곳을 향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팟, 느릿느릿 스파클러의 몸통을 좀먹고 들어가던 빛의 파편이 그 수명을 달리하고... ...
 
순간,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그러고보니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 무슨 일일까요
 
가 진: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다 사이렌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모래사장 구석에서 붉은색 불빛이 번쩍였다. 스파클러나, 싸구려 폭죽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것. 아무래도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인 것 같았다. 구급차 뿐만이 아니라 경찰차도 두어 대 도착해 있었다. 하여튼, 눈은 좋고 볼 일이지. 응응. 주변에는 듬성듬성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인파의 틈 사이로... ... 들것에 들린 무언가가 구급차에 실려 올라가는 것을 봅니다
 
들것 가득 하얀 천이 덮여 있습니다
 
그 천 바깥으로 핏기가 싹 가신 작은 팔이 툭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소금에 굳은 손가락, 백지보다 더 창백한 피부, 익사체입니다
 
사 록: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낮부터 종일 고요하기만 하던 리조트 앞바다가 온통 떠들썩합니다
 
... ... 얽히는 목소리는 두서가 없고 정신이 사납습니다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문득, 객실 체크인 직후 두 사람의 방에 찾아왔던 젊은 남성이 떠오릅니다
 
분명 어린 딸을 잃어버렸다고 했죠, 설마... ...?
 
경찰: "거 찍지 마시라니까 그러네. 물러 서 주세요!"
 
조끼를 착용한 경찰 두어 명이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제지합니다
 
앰뷸런스가 서둘러 자리를 뜨자 밀집 되어 있던 인원 몇 명은 무리에서 이탈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어떤 기분이든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썩 유쾌하진 않죠
 
이윽고 상황을 종결한 경찰들이 마저 관할서로 돌아가면 모여든 인파도 와해된 이후입니다
 
주변은 적응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고요를 되찾았습니다
 
한순간 찾아든 적막에 고개를 돌리면... ... 어라?
 
당신의 애인이 없습니다
 
잠시 화장실 내지는 객실에 들렀겠거니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추위에 사고마저 얼어버릴 무렵, 덜컥 불안함을 느낍니다
 
정처 없이 바다를 둘러봐도, 로비에 들어서도, 안내 데스크에 물어도, 편의점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화도 받지 않는군요
 
객실로 이동해보면 현관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 객실 키는 그에게 있던가요?
 
한참을 헤매다 다시 객실로 돌아가면, 아까완 다르게 문이 열려 있습니다
 
가 진:"야, 너... ... 어디 갔다 왔냐."
 
내가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잔뜩 당황한 얼굴이 됐을 터였다. 어딜 가도 보이지 않아서 서러운 탓에 팔자가 된 눈썹이 펴지질 않았다. 잠시 편의점, 갔다 오겠다고 그랬는데... ... 못 들었지, 너. 일단 상황 설명이 필요한 낯짝이라 급하게 중얼댔다.
 
"배터리가 다 됐는데, 니가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먼저 들어왔거든... ... 그러니까 오네."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그러고 보니, 앰뷸런스 소리를 듣기 직전 얘가 뭐라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 ... 아무래도 주변이 소란스러운 탓에 듣지 못했던 거겠죠
 
편의점에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테이블 위에 비닐 봉투가 놓여 있습니다
 
주류, 음료, 따뜻한 커피 등의 간단한 마실 것과 함께 간식이 조금 담겨 있습니다
 
어쩐지 맥이 빠집니다
 
사고 현장을 목도하고, 너무 예민해져 있던 걸까요
 
그런 걸 겁니다
 
남은 스파클러는 버리게 되었지만... ... 뭐,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은 쏙 들어갔네요
 
사 록:",,,크게 말하고 갔어야지."
 
엄청 찾아다녔단 말이야. 긴장이 한 번에 풀려 침대에 주저앉았다. 서러워보이는 얼굴을 보자 괜히 같이 서러워졌다. 네게 손을 뻗어 끌어안았다. 나 돌아다니느라 힘들어. 답지않은 어리광을 부렸다.
 
가 진:"... ... 멍청아, 니가 좀 조용히 말하라며."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등허리를 토닥여줬다. 내가 서러운 만큼 얘도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찾은 게 어디야. 쉽게 생각하려니 입안이 까끌했다. 뽀뽀나 해줄까, 어디~ 으름장을 놓듯 중얼대며 네 머리통 여기저기에 입술을 댔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사 록:내가 그랬었나... 그랬었던 것 같기도 했다. 토닥여주는 손길에 인정하기는 조금 켕기지만 안심이 되기는 했다. 찾았으니까 됐지. 네게 얼굴을 묻은 채로 숨이나 차분히 골랐다.
 
"자자."
 
가 진:"이러고 자?"
 
기다려봐. 옷 좀 벗게. 불도 끄고 올게. 차근히 너를 달래며 살살 외투를 벗겼다. 잔뜩 구겨진 코트 자락을 손으로 팡팡 두드리며 한 구석에 걸어뒀다. 물론 마찬가지로 내 옷가지 또한. 느린 손길로 불을 끄고 가지런히 누웠다.
 
"일이 너무 많았어. 졸리지?"
 
사 록:"조금?"
 
많이는 말고 조금.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랬다. 당근을 먹어야겠다. 보통이었으면 등을 대고 누워서 바로 눈을 감았을텐데 오늘은 일도 조금 있고 했으니까... 네 쪽으로 몸을 돌려 팔을 뻗었다. 알아서 굴러 들어오겠지.
 
가 진:침대에서 부둥켜 안아 주는 타입도 아닌 놈인데. 정말 놀라긴 했나보다. 생각하며 꾸역꾸역 네 품에 가 안겼다. 꾹, 안고 등허리를 쓰담았다. 항상 하던 것처럼 장난 반, 야한 분위기 반으로 만지작대는 게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차근하게 쓰다듬었다. 애를 달래는 것 같이. 물론 내 감상을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자자, 일어나서 봐. 재워줄게."
 
... ...
 
...
 
[ 20XX. 12. 29 AM 08 : 03 ]
 
전날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리기도 전의 이른 시간입니다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면 먼저 아침을 맞이한 당신의 애인이 침대 끝에 걸터앉아 창 바깥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요한 시선을 따라간 끝에 걸리는 것은 당연히도 바다입니다
 
이 객실의 창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푸른 바다, 혹은 하늘 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한 겨울인지라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사방이 어슴푸레합니다
 
그 사이로... ...
 
사 록: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잔잔하고 희미하게 부서지는 파도 속에 섞인... ...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 진:"... ... 일어 났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네가 보였다. 새끼, 귀엽기는... ... 생각하며 살살 웃었다. 살짝 드리운 역광, 묘하게 부산스러워보이는 머리칼... ... 그리고,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걸까요?
 
양 눈 아래가 퀭한 것이 어딘가 아파보이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 록:"진."
 
잠에서 막 깬 탓에 목소리가 반쯤 잠겨있었다. 헛기침을 해봐도 그대로인 것 같아 말을 포기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 네 옆으로 다가갔다. 네 시선을 따라 바다를 잠시 흘깃 쳐다봤다.
 
"어제부터 바다 열심히 보네."
 
가 진:"아니, 그냥. 밖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을 못 자겠는 거야. 그래서."
 
웅얼대며 가까이 다가온 네게 머리를 기댔다. 역시 키가 큰 건 이런 게 좋아, 따위의 생각을 했다. 아, 뭔 소린진 모르겠는데 못 잘 정도였다니까. 얘기하며 뒷목을 콩콩, 두드렸다. 워낙 예민한 성격인지라 뭐,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밥이나 좀 시키고 있어봐.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 좀 먹어보자."
 
슬슬 욕실로 들어가면서 목을 돌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잠자리가 사납긴 했나봅니다
 
사 록: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물론 쟤는 잠귀가 밝고 나는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괜히 어제 일 때문에 기분이 뒤숭숭했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 쪽을 한참 쳐다봤다. 똑같이 파랗고 파도치는 겨울 바다인데 무슨 문제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이게 다 당이 부족해서 그랬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주문해놓고 다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띵동!
 
얼마 지나지 않아 룸서비스가 도착한 듯 소리가 울립니다
 
조식이랍시고 나온 음식들은 그레놀라, 후르츠 링 같은 부담없는 류의 시리얼들과 갓 구운 머핀, 모닝빵, 바게트 등 속재료가 채워지지 않은 빵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른 아침이 가져다주는 필연적 피로에 표정을 구길 법도 한데, 이곳의 모든 직원들은 항상 친절하며, 투철한 서비스 마인드를 자랑합니다
 
가 진:"어, 밥 왔냐?"
 
욕실에서 머리를 탈탈, 털며 나오니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네가 시킨 거야? 물으면서 시선을 네게로 고정했다. 머리카락이 멋대로 휘날렸다. 그래도 물기가 안 떨어지는 게 어디야. 씻고 오니 그래도 좀 나은 것 같기야 했다. 뻐근했던 게.
 
"나는 시리얼 먹을래~"
 
사 록:"많이 먹어."
 
음식들 옆에 선 채로 빵을 집어 입에 넣었다. 서서 먹으면 늘 욕도 함께 먹곤 했지. 아련한 추억에 빠져 잠시 미소를 띄웠다. 잠이 조금 덜 깬 모양인지 계속 눈이 감겨서 벽에 등을 대고 섰다. 빵은 맛있었다.
 
가 진:열심히 우유에 시리얼을 말고 있자니 서서 조는 게 보였다. 네 옷깃을 잡아 당겨 옆에 앉혔다. 서서 졸면 못써. 그러다 넘어지면 누가 받아주냐. 난 너 받다가 같이 쓰러져. 시리얼을 열심히 입에 집어 넣었다. 그래봤자 한 그릇 이상을 먹진 못하겠지만.
 
"너나 많이 먹어. 큰 게 열량만큼 안 먹으면 어? 안 된다 이 말이야."
 
사 록:"그런 말은 네 동생한테나 가서 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괜히 툴툴대고 싶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빵 하나를 붙잡고 한참을 씹고 있으니 저런 말을 할 만도 했다. 네게 몸을 기댈 수도 없고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앉아있게 되어버렸다. 한숨을 푹 내쉬며 씹던 것을 목 뒤로 넘겼다.
 
가 진:"걘 이제 포기했어. 먹여줘도 안 먹어."
 
그러니까 그건 이제 내 몫이 아니라는 말씀. 얘기하며 빈 입에 시리얼을 춉, 먹였다. 어이없어할 얼굴이 눈에 선했지만 뻔뻔히 시리얼에 시선을 고정하곤 우걱댔다. 너무 많이 말았나, 생각해서 먹인 게 정말 아니었다. 뭐 어차피 한 입인데 무슨 일이야 나겠어.
 
사 록:누군 먹여주면 먹는 줄 알... 대꾸를 하려고 했는데 입 안으로 숟가락이 들어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받아먹고 봤는데 하려던 대꾸가 생각났다. 먹여주면 먹네... 시무룩해졌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네가 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잘 먹네.
 
가 진:이렇게라도 먹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도 못할 미래를 알고서 꾸역꾸역 먹었다. 중간에 몇 번씩 네 입에 숟가락을 가져다 대기는 했지만, 그정도는 봐줄 거라고 믿었다. 대충 다 먹은 것 같으니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얼핏 시계를 보니 열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 셔틀 버스 타고 갈 거야?"
 
사 록:"글쎄? 차 타고 가도 상관은 없는데."
 
네가 입에 넣어준 시리얼을 우물거렸다. 잠이 조금씩 깨니 맛도 느껴지고 참 좋았다. 일어나 네 뒤를 졸졸 따라갔다. 버스는 편하고 차는 편하지. 둘이 다른 의미인건 알지?
 
가 진:"그래도 이왕 온 김에 버스나 타고 가자. 이것도 뭐, 그... ... 경험이고 뭐 그런 거지."
 
대충 대답하며 입을 옷을 추렸다. 어제랑은 다르게 더 예쁜 걸 입어야지, 생각하니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입새로 샜다. 오늘은 좀 덜 동글하게 입는 게 더 간지나려나, 생각했다. 결국 선택한 옷이라는 건 어차피 항상 입던 대로의 스타일이었지만.
 
사 록:"그래. 버스 좋지."
 
소금물에 젖은 신발을 계속 신는가 아니면 운동화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가, 가 가장 큰 문제였다. 불쌍한 신발을 더 혹사하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니니 운동화나 신을까. 운동화를 만지작대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약간 안 어울리기야 하겠지만 운동화를 신자. 본의아니게 애같은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머리를 조금 덜 올리든가 할 작정이었다.
 
가 진:"버스 말고 나도 좀."
 
대충 대꾸하며 애가 옷 입는 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늘도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 같은 라인이군, 같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들키면 혼날 것 같았다. 괜히 서두르는 척 겉옷을 둘렀다. 아, 야 근데... ...
 
"셔틀버스 운행 시간 안 물어봤다."
 
사 록:아. 어제보다 가벼운 느낌의 코트를 걸치다 손이 멈췄다. 버스 시간을 안 물어보면 어떡하냐? 물어볼 입이 두 개인데 괜히 애한테 툴툴거렸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챙긴단 말이야. 이런 건 네가 다 챙겨줬잖아. 입 밖으로 냈다간 또 귀여운 새끼 취급당할 만한 소리였다. 입술을 꾹꾹 물다 옷이나 마저 입었다.
 
"뭐... 이제 물어보면 되겠지."
 
가 진:"엉. 지금 내려가서 물어보자. 우리가 늦게 일어난 거도 아니니까 시간은 넉넉할 거야."
 
아까부터 탐내던 허리를 슥슥 만져댔다. 살이 좀 빠졌나... ... 가늠해보다 혼날까 손을 뺐다. 야, 너 살 빠졌냐. 물어보며 너를 올려다봤다. 괜히 입술 꾹꾹이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볼따구도 만지고 싶었다. 진짜 혼나겠지... ... 결심했다.
 
"내가 별짓 더 하기 전에 나가자."
 
사 록:살? 네가 만진 곳에 손을 올려 더듬었다. 그렇게 빠진 것 같진 않은데. 옷이 조금 헐렁한가 싶어 셔츠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자가검열이 잘 되네."
 
가산점 줄게. 점수 기록표도 없는데 주는 가산점이 무슨 의미인지. 그래도 일단 점수를 주면 기분은 좋을테니까. 그래도 별 짓 못하게 네 손을 잡아놓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가 진:"지금 별짓을 해버리면 크루즈가 날아가잖아."
 
얼마나 할 생각이냐고 물어보면 모른 척 눈을 크게 떠야지, 후일을 다짐했다. 쉽게 엘리베이터가 잡힐 때부터 알아봤지만, 다행히도 로비는 한산했다. 잡힌 손을 요령있게 빼내 깍지껴 잡았다. 안내 데스크 쪽으로 너를 이끌었다. 존대가 어색했다.
 
"저기, 혹시 셔틀 버스가 몇 시... ... 인가요?"
 
안내 데스크 직원: "네! 리조트와 선착장간의 왕복 버스는 매일 하루에 한 대씩 운행하고 있습니다. 오후 12시 정각에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출발하고, 크루즈 항해가 끝나는 오후 9시 30분에 리조트로 돌아오는 버스가 출발합니다."
"리조트 본관의 뒷편 주차장 A열에서 탑승을 도와드리고 있답니다."
"버스 이용은 무료입니다. 티켓은 따로 끊을 필요가 없으니 출발 10분 전까지 미리 탑승해주세요."
 
사 록:"시간이 기가 막히네."
 
직원과의 대화가 끝날때까지 네 머리카락에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나도 귀담아듣지 않은 주제에 십 분 전... 열두시... 몇 단어만 듣고 너를 이끌었다. 핵심 단어는 그래도 다 들었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가 진:"제대로 듣지도 않아놓고 말이 많네."
 
비슷한 말투로 톡, 쏘아붙이곤 네 손에 이끌려 낭창댔다. 결국 어쩔 수 없는 건 완력의 차이일까... ... 어쩐지 우울해졌다. 시간이 조금 촉박한 탓에 거의 질질 끌려갔다. 이럴 바엔 진심으로 업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좀... ... 자존심이 상하니까. 응응. 도착하니 버스가 미리 와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없나.
 
사 록:걸음을 조금 빨리한 탓에 애가 끌려오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다음 기회에는 공주님 안기나 해서 데리고 가야겠다. 이미 속으로 그렇게 정해두고 네게 통보했다.
 
"다음엔 안아줄게."
 
가 진:"미, 미, 미쳤냐?"
 
네 속이 훤히 보였다. 역시 날 쪽팔리게 만들어서 기절시킬 셈이지. 투덜댔다. 대충 버스의 뒷자리에 애를 구겨넣었다. 생각보다 버스는 한산했다. 역시 자차를 가지고 온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공짜라는데 굳이 운전을 하고 싶진 않은데, 나만 그런가. 별로 드라이브에 큰 유감은 없었다. 차라리 내 오토바이를 타지. 곧 셔틀버스가 부릉부릉댔다.
 
사 록:네가 당황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버스 좌석에 푹 묻혀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표정이 확 피어서 방실방실 웃고 있는데 모르기가 더 힘들거였다. 막상 버스에 타니 할 게 없어 창 밖을 내다봤다.
 
가 진:"으, 근데 목이 너무 마르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히터가 빵빵하더니."
 
일부러 히터가 안 닿는 구석에 애를 밀어 놨더니 아주 직빵이었다. 콜록, 마른 기침이 샜다. 요즘 누가 이렇게 히터를 세게 틀어. 칭얼대며 거의 반쯤 안기듯 네게 몸을 부볐다. 자꾸만 갈증이 났다.
 
"물 안 가지고 왔지, 멍청아."
 
당신의 애인이란 놈이 별안간 물을 찾습니다
 
난방용으로 틀어진 히터가 꽤 건조한 모양이에요
 
당신 역시 먼지를 들이킨 듯한 텁텁함을 느낍니다
 
그러고보니... ... 당신의 애인이 이렇게 체온이 높았던가요?
 
안겨오는 몸체가 녹은 고양이마냥 따끈합니다
 
사 록:"공기가 좀 안 좋은가보다."
 
조금만 있어보자. 네 뺨을 쓰다듬었다. 어제부터 계속 마실걸 찾는 것도 그렇고 추위를 (원래 탔지만) 타는 것도 그렇고 지금 따끈한 것도 그렇고. 혹시 아픈 건가 싶어 네 이마에 손을 얹어봤다. 원래 얘가 이렇게 뜨뜻한 애가 아닌데.
 
"진, 아파?"
 
가 진:"엉?"
 
네 말에 반문하며 네 손에 머리를 부볐다. 생각해보니 뜨끈해야 할 네 손이 비슷한 온도로 느껴졌다. 헐, 나 열 오르나봐. 근데 아마 못 자서 그런 게 아닐까? 칭얼대며 더 뽀비작댔다.
 
"오늘 놀고 와서 쉬면 되지이, 응응."
 
사 록:흠. 어딘가 미심쩍긴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놀고 싶다는 거 못 놀게 했다가 칭얼거리면 병자가 순식간에 원쁠원이 될테니까. 네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잔소리 비슷한 것을 했다. 원래는 듣는 입장이었는데. 괜히 묘한 기분이 됐다.
 
"대신 아픈 것 같으면 바로 말 해야해."
 
가 진:"이상하면 바로 말 할게. 지금은 목 마른 거 빼고 별 거 없는 거 같아."
 
괜히 주위를 슥슥 둘러보다 네 얼굴을 턱, 잡고 찐하게 뽀뽀를 한 판 때렸다. 뭐 여차하면 튼튼한 사록한테 옮길게. 웃는 얼굴이 반쯤은 얄미웠다. 어차피 추운 밤에 거리를 걷고 해서 얻을 병이라곤 감기밖에 없으니까.
 
"야, 그래도 걱정 받으니까 좋다."
 
사 록:허. 웃는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을 수 없다는 이 사고방식이 참 답답했다. 웃든 울든 침은 뱉어야하는데. 습격당한 기분이었다. 입술에 손을 올렸다. 넌... 좀... 사람이 때와 장소도 조금 가릴 줄 알고... 그래야지... 멱살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던 손이 툭 떨어졌다. 됐다. 아픈 애한테...
 
"이제 걱정 안 해."
 
가 진:"걱정 해줘어."
 
말꼬리를 늘리며 눈썹을 팔자로 내렸다. 지니 슬퍼. 괜스레 애교도 한 번 부려봤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좀 더 귀여워보이지 않을까. 왜 걱정 안 해줘... ...? 따끈한 얼굴을 네 목덜미 언저리에 부볐다. 확 여기다 뽀뽀해버릴라. 생각하다 정말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관뒀다.
 
사 록:"하는 짓 보니까 덜 아픈 것 같아서."
 
목 예민한 거 알고 하는 짓인가? 모를리가 없지.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입이라도 댔다가는 버스 바깥으로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어떻게 잘 하면 던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서 기분이 다시 묘해졌다. 왜 묘했는지는 몰랐다. 그냥 가만히 흘겨보기나 했다.
 
가 진:"아냐, 나 아픈 거 같애."
 
그치, 막 여기두... 저기두... ... 얘기하며 몸 곳곳을 들이댔다. 그리고 덜컹, 정차합니다~ 기사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하여튼 버스 기사들은 그 뭐야, 그 분위기 파악을 못한단 말이야.
 
"도착했나보다... ... ."
 
사 록:아픈 곳이라며 여기저기 들이대는 게 좀 귀엽나. 아, 됐어. 짜증 비슷한 투로 널 밀어내며 웃지 않게 조금 신경 썼다. 타이밍 좋게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렸다는 듯 일어섰다.
 
"내리자."
 
차에서 내리면 리조트 앞바다에서 맡았던 것보다 조금 더 깊고 농밀한 짠내가 호흡기를 덮칩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호화 여객선을 발견합니다
 
벌어진 배의 입구는 뭍과 맞닿은 다리에 이어져 있고, 그 앞에서 직원이 입장을 돕고 있습니다
 
유니폼을 확인하면 리조트 직원들이 입고 있던 것과 동일한 디자인의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 크루즈 항해 또한 리조트 측의 연계로 진행되는 이벤트 중 하나인 거겠죠
 
가 진:내리자 말자 네 손을 부여잡았다. 사람이 많으면 좀 걱정이 된단 말이지. 한 손으론 네 손을 잡고 남은 한 손으로는 주머니를 뒤져 티켓을 꺼냈다. 티켓을 직원에게 건네니 퀴퉁이의 점선을 따라 티켓의 일부를 가져갔다. 흠, 역시 체계적이네, 같은 생각을 했다. 뒤에서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미아 되지 않게 조심해라."
 
사 록:"너도 길 안 잃게 조심해."
 
별 걸 다 신경 쓴다는 투였다. 사실 잃어버리면 조그만 네가 찾기 힘들겠지, 최소 머리 하나 정도는 삐죽 올라와있을 내가 찾기 힘들겠냐?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일단은 손을 단단히 잡아줬다. 잃어버리면 내 손해지.
 
승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장한 기적 소리와 함께 배가 천천히 물길을 가르고 움직입니다
 

"환영합니다, 승객 여러분! 이곳, 바다 위를 항해하는 작은 섬에서 멋진 시간 보내시기를!"

 
들뜬 해초 냄새와 함께 짧고도 제법 기다란 복도를 걷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가 꼭 커다란 파티장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한 손에 샴페인이 담긴 글라스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향한 찬미를 속삭입니다
 
꼭 분위기가 무르익은 저녁의 연회장과도 진배 없습니다
 
자, 하선까지 여덟 시간이 남았습니다
 
훗날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무어라도 눈에 담고 삼키며 즐기기로 할까요
 
마침 크루즈 내의 모든 서비스가 무료라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저기,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지도가 부착되어 있군요
 
BGM : Kevin MacLeod ~ Sidewalk Shade ◁Link
 
가 진:"나는 머리가 이래서 너보다 더 눈에 띌 걸."
 
작아도. 뒷 말은 어쩐지 했다간 혼자만의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삼켰다. 그래도 칭얼대면 손을 꾹 잡아주긴 했다. 그게 좋았다. 사실 그냥, 뭐... ... 좋은 거로 치자면 다 좋았지만. 그냥 지금은 그래서 좋았다는 거다. 팔꿈치로 너를 툭툭 쳤다.
 
"그래서 어디부터 갈래."
 
뻥 뚫린 난간 너머에서부터 불어오는 겨울 바다의 바람은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비단 짠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꼭 맡아본 사람들만이 머릿속에 공굴려 형체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추상적인 무언가
 
옷가지를 여민 승객들이 종종 이곳저곳 이동하며 시간을 떼울 것들을 탐색합니다
 
두 사람은 그 사이에 섞여듭니다
 
사 록:어디 가지. 지도를 보니 괜히 머리가 아팠다. 이번 생에서 머리 쓰기엔 영 글러먹었다. 너를 데리고 카지노부터 가보기로 했다. 가면 뭐가 있지? 게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게임 할 줄 알아?"
 
가 진:"게임은 못하면 배우지 뭐. 시간 떼우기로 최고다, 야."
 
얘기하며 웃었다. 네가 카지노를 가고 싶어하는 것 같길래 그냥 무턱대고 손을 잡아 끌었다. 기대하던 커다란 카지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말 그대로 킬링 타임은 충분할 것 같았다. 사실 카지노보단 게임센터 같기야 했다만. 실제로 돈을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슬롯을 터트리거나 점수를 획득하면 백화점 상품권, 인형 따위의 선물을 준다고 적힌 팻말을 줄줄 네게 읽어줬다. 어차피 안 들을 테지만.
 
눈앞에는 슬롯 머신, 다트, 사격게임, 인형 뽑기 등의 기계가 보입니다!
 
사 록:뭐하지. 옆에서 네가 종알종알거리는 동안 안을 둘러봤다. 인형 같은 걸 뽑으면 가지고 다니는 일이 귀찮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아까우니까. 제일 간단하고 별 스킬도 필요 없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슬롯 머신 좋아!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가 진:네가 슬롯 머신에 손을 가져다 대고 띠롱, 소리가 울리는 순간이었다.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슬롯 머신에 뜬 건 포도, 딸기, 그리고 7이라는 숫자.
 
"야... ... 너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
 
나도 해봐?
행운
기준치: 45/22/9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똑같이 띠롱, 소리가 울리고... ... 딸기와 레몬, 포도가 슬롯 머신에 뜹니다
 
운이 없는 건 피차 일반이었나보네요
 
사 록:"너도 다를거 없네."
 
힘내라, 새끼... 네 어깨를 토닥이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오늘은 운도 없는 것 같으니 다트나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가 진:"그렇네... ... 운이라곤 더럽게 없지,"
 
얘기하며 눈을 돌렸는데. 저 미친 놈이... ... 무슨 다트 열 개 중에 열 개를 맞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가 하는 걸 바라봤다. 진짜 미친 놈... ... . 결국 입새로 욕이 흘렀다.
 
"넌 사실 못하는 운동 없지."

난 좀 꿀릴 것 같아서 안 할래.

 
사 록:뿌듯한 얼굴로 네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게 니 애인 클라스다. 뭐 그런 함축된 뜻이 있었다. 운은 몰라도 신체 능력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 아닐까. 저번에 보니까 사하라는 나사도 맨손으로 어떻게 뽑던데 조금만 더 단련하면 나도...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얼추 생각을 정리했다.
 
"못하는 운동? 세상에 하나쯤은 있겠지."
 
가 진:"그래... ... 세상에 하나 쯤만 있겠지. 나도 잘 하는 운동 하나는 있어서 다행이다."
 
손을 들어 네 엉덩이를 톡톡, 치곤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자리잡았다. 내가... ... 적어도 이건 뽑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튼을 눌러 시작했다. 꼭 지닮은 검정 시바 인형을 뽑아줘야지. 저게 무슨... ... 게임에 나오는 거랬는데. 각설하고 열심히 손을 움직여봤다.
행운
기준치: 45/22/9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인형이 잘 들려오나 싶더니, 툭... ...
 
떨어지고 맙니다... ...
 
사 록:저게 무슨 근본없는 어필이지? 당황스러움을 넘어 멍하니 있는 동안 인형이 툭 떨어졌다. 불쌍한 녀석. 네 옆에 끼어들어 작게 웃었다.
 
"인형 뽑기도 못하네."
 
똑같이 못해봤자 다트로 기선제압을 했으니 충분했다. 누구의 기선을 제압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시도해보기로 했다.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가 진:"야, 너도 뭐 운이 좋은 줄 아냐?"
 
... ... 어라. 분명 똑같이 잡은 것 같았는데 네 갈고리는 단단했고 내 갈고리는 진짜 별로였다. 눈썹이 축 처졌다. 어떻게 이러냐... ... 시발 신도 날 버렸어. 중얼대며 구멍에서 검정 시바 놈을 꺼냈다. 시발... ... 귀엽긴 하네... ...
 
"너 닯았어."
 
사 록:아, 인형 안 뽑으려고 했는데 눈치없는 손이 또 열일을 해버렸다. 분명 곤란한데 웃음이 났다. 시바 인형을 쓰다듬어주다 네 말을 듣고 눈을 마주봤다.
 
"야 이게 어딜 봐서... 닮았나?"
 
가 진:"이거 봐, 똑같이 생겼어!"
 
네 얼굴 옆에 시바를 가까이 대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존나 닮았다. 일단 귀엽고 귀엽고 귀엽다는 게 닮았다. 그리고 까맣고, 또... ... 앞발이 귀엽지. 응응. 사록 손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존나 귀여운데. 내 뇌내를 스캔할 수 있었으면 난 골백 번 고쳐죽었을 거다.
 
사 록:근데 왜 그 많은 것 중에서 하필 시바야? 질문을 대놓고 하진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시바... 인형을 쓰다듬는 손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더 듣고 있다간 인형의 이름만 중얼댈 것 같아서 네 품에 인형을 안겨줬다.
 
"나 닮은 거 잘 안고 있어. 잃어버릴라."
 
가 진:"이건 잃어버려도 돼."
 
널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얘기하곤 웃었다. 눈가가 얄팍하게 휘어지는 게 딱 네가 좋아하는 꼴 중 하나였다. 한 손에는 시바를 들고, 한 손에는 네 손을 잡았다.
 
"사격도 해? 아님 딴데 갈까?"
 
사 록:왜 쟤가 웃는 얼굴만 보면 한숨이 나올까. 괜히 네 눈을 가려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럴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자리를 옮겨버리면 좋겠지만 여기선 자리를 옮겨봤자 같은 배 안일테니까.
 
"사격은 별로야. 사촌 중에 하나 있을 것 같아서 싫어. ...바나 가보자."
 
당신이 바로 걸음을 옮기자, 당신의 애인도 종종걸음으로 당신의 뒤를 따릅니다
 
리조트 스카이 라운지에서 방문했던 칵테일 바와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흡사한 바입니다
 
역시 이 배는 리조트의 소유인가봐요
 
바에 배치 되어 있는 두어 명의 직원이 끊임없이 오색의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좌석에 착석하자, 직원이 두 사람을 반기며 메뉴판을 꺼냅니다
 
가 진:네가 앉는 자리 옆에 통, 앉아 다리를 까딱였다. 좀 애처럼 보일 지도 몰랐다. 민증 검사를 안 해서 다행인가... ... 아니, 뭐 그럴 정도의 얼굴은 아니지 않나? 생각하며 손끝으로 네 볼을 쿡, 찔렀다.
 
"뭐 먹을래?"
 
사 록:메뉴를 눈으로 슥 훑었다. 음,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 대충 보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으면 선택할까 했는데 그것도 영 마뜩찮았다. 이럴 때는 줄세우기가 최고였다.
 
"맨 위에 있는 거."
 
가 진:꼭 마셔도 지같은 걸 마시지. 숨죽여 웃었다. 칵테일에 대해 잘 모르는 놈이라 다행이었다. 이거 멘헤튼 하나랑요, 핑크 레이디 하나요. 요인지 여인지 중간 발음이 됐다. 존대만 쓰려고 하면 줄줄 새는 발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칵테일 제조를 하던 직원이 웃으며 저희 칵테일에는 특별한 마법을 걸어 두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영업용 멘트겠죠?
 
낮술이라고 생각하니 좀 그렇지만, 모처럼 바다 여행이고, 이곳은 크루즈인 걸요
 
게다가 칵테일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각자의 앞에 칵테일이 놓입니다
 
사 록:체리? 메뉴판에 그런게 적혀있었던 것도 같았다. 체리를 몇번 굴리다 잔을 들고 크게 한모금을 들이켰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맛에 민감하질 못해서 그냥 끝맛이 쓴가... 싶은 감각만 남았다. 잔을 만지작대며 네 쪽을 힐끔거렸다.
 
"맛있어?"
 
가 진:분홍색이 인상적이고 목넘김이 쉬운 칵테일. 기본적으로 당도도 높고, 예쁘기도 하고. 애초에 귀여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먹기엔 좀 옅은가, 싶은 맛이긴 하지만. 네 물음에 고개를 주억였다. 이거 맛있어. 달아.
 
"인생을 맛봤더니 이제 이런 칵테일 정도는 달달한 음료수 같다... ... ."
 
사 록:
rolling 1d8
 
(
8
 
)
 
 
=
8
 
어쩐지 술을 한 모금 들이키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음식, 동물, 환경, 상황, 장소, 혹은... ... 그래요 무엇이든 상관 없이요!
 
사 록:좋아하는 것...? 이래서 사람이 낮술을 하면 안된다는 거다. 이상한 소리나 하게 되니까. 눈을 반 내리깐 채로 조심조심 헛소리를 했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되게 좋아해... 눈도 귀엽고 꼬리도 귀엽고... 털 포슬포슬한 것도 귀엽잖아... 키우고 싶은데 귀찮아할 것 같아서...
 
가 진:네가 중얼대는 걸 듣다가 작게 웃었다. 네가 키우고 싶으면 키워. 근데... ... 얼굴을 쑥, 네게 들이 밀고는 눈을 깜빡였다. 나로는 안 될까. 어쩐지 마지막 대사만 들으면 절절한 사랑 고백 같기도 했다. 자꾸 좋아하는 게 앞에 있으니까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난 너 좋아하거든. 그래서 방해 받는 건 별로."
 
사 록:어? 어, 어... 어...어어... 으어... 어 몇 번으로도 충분히 감정 변화를 전달할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은 얼굴을 숨기며 기어들어가는 소리였지만. 저건 반칙이잖아. 직설적인 말에 면역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달달하다 못해 당분 과다인 멘트가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과민반응하는거지... 계속 몸이 쪼그라들었다.
 
가 진:저건 대답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충분히 귀여웠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저놈이 이거 한 잔에 훅 갈 놈도 아니고. 오늘의 돌직구는 너무 강했나,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줄어들지 않을 거였지만. 아까부터 목이 말라서 그런지 앞에 칵테일을 두니 자꾸만 벌컥벌컥 들이키게 됐다. 이게 다 히터가 빵빵해서 그래, 히터가.
 
"난 강아지 상 좋아해. 꼭 너 같은 거."
 
사실 너때문에 강아지도 좋아해, 말하려던 뒷 문장을 겨우 삼켰다. 이거까지 얘기해줬다간 여기서 애가 쓰러질 것 같았다.
 
사 록:"...됐어. 안 물어봤어."
 
이게 다 낮술 때문이야. 그만 마셔. 칵테일을 뺏어다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저게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저런 식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물론 전에도 있기야 했지만... 더 이상 빨개졌다간 터질 것 같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눈까지 열이 올라 따끈했다.
 
풍선 (GM):사,,,
랑한다,,,
사랑아,,,
가슴벅찬,,,그이름,,,
ㅂㅜ르고불러도,,, 모자랄사람아... ,,,,
 
그릇:이상한 사람일세
 
가 진:"안 물어보는 건 그럼 다 가르쳐주지 마?"
 
아닐텐데. 말하며 네 잔도 저 멀리로 치워버렸다. 괜히 빨개진 얼굴이 귀여웠다. 괜히 한 손을 들어 네게 손부채질을 해줬다. 너 그러다 터지겠다. 감상평도 한 줄 써붙였다. 괜히 열이 올라 붉어진 눈가 같은 걸 봤던 것 같았다.
 
"그만 마실래?"
 
사 록:응.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신에서 더 마셨다가는 무슨 일이 더 날지 몰랐다. 기껏 배에 타서 빨개지기만 할 수는 없지. 마법을 걸어놨다더니 무슨... 진실의 약이라거나 TMI의 약이라거나 그런 걸 타놨나. 잡생각을 하니 열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가 진:끄덕여지는 고개에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쓰담았다. 귀여운 자식. 입밖으로 내도 지금은 혼나지 않을 터였다. 술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꽤 마음이 편해졌다. 바깥만 아니었으면 확 잡고 뽀뽀나 해버리는 건데. 생각하며 웃었다.
 
"어디 갈까, 이제."
 
사 록: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더 이상 저 페이스에 휘말렸다간 정말 원수라도 진 놈처럼 봐버릴 지도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저런 면이 좋은데 딱 저런 면만 싫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네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비열하게 웃었다.
 
"카페 쪽이나 가볼래."
 
가 진:"그래, 그래. 가자."
 
이럴 때만 약해지는 얼굴이 귀여웠다. 역시 괴롭히기 좋은 조형이라니까. 이상하게 웃는 얼굴이 멍청해보였다. 입밖으로 냈다가는 혼나겠지만서도. 슬그머니 네 손을 잡았다. 말랑한 손바닥이 따끈해진 것 같기도 했다. 시원한 거라도 마시게 하면 얼굴이 좀 식으려나. 귀여운 자식.
 
사 록:"오구오구 하지마."
 
인상을 썼다. 사납게 올라간 눈매는 올라가봤자였다. 아쉽기야했지만 무섭게 생겼어도 쟤가 그런 걸 타는 애여야 말이지. 쟤네 동생도 못한 일을 내가 어떻게 해. 그냥 잡힌 손을 단단히 고쳐잡고 고개를 처들었다.
 
가 진:"왜애."
 
말투를 질질 늘이며 네 팔 즈음에 달라붙었다. 머리를 약간 뽀비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생각보다 사록은 귀엽고 예쁜 거에 약했다.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 애를 살짝 올려다보며 눈썹을 팔자로 말았다.
 
"뭐 먹을래, 사줄까?"
 

응? 으응?

 
사 록:저게 잘 먹힌다는 걸 알고 하는 짓이겠지... 생각하니 얄미웠다. 그니까, 사람을 저렇게 살살 녹여놓고 자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인게 얄미운 거지. 살살대는 태도 쯤은 취향이었다. 이제 와선 그게 취향인지 뭐가 취향인지 모르게 됐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가 네 손을 가져다 가볍게 물었다. 잇자국이 옅게 남을 정도로만.
 
"내가 사먹을거야."
 
가 진:자기가 정말 소형견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옅게 잇자국이 남은 손을 보이지 않게 살살 털며 네 꽁무니를 졸졸 쫓았다. 소형견 아닌데... ... 저 새낀 대형견인데... ... 생각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하고 익숙한 인사가 들렸다. 네 손을 꾸욱 잡아봤다.
 
"그럼 지니는 아이스 초코~"
 
사 록:손에 잡힌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카운터에 기대 섰다. 얼어죽을 것 같은 날씬데 아이스가 입에 들어가나. 어이는 없었지만 순순히 뜻에 따라줬다. 고구마 라떼 먹고 싶다. 하지만 카페 라떼를 먹기로 했다.
 
차갑고 건조한 대리석이 깔려 있던 리조트나 크루즈의 인테리어와 달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우드 풍이 인상적인 협소한 카페입니다
 
가 진:"원래 얼어 죽어도 아이스랬어."
 
사실 뜨거운 걸 잘 못 먹는다고는 죽어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참한 집고영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데 혀까지 정말 고양이 혀라고 해버리면 얼마나 더 놀림을 당할지 눈에 선했다. 그래서 그냥 아이스를 좋아하는 거로. 아니, 사실 좋아하기도 했다.
 
"하루 한 잔 카페인 뭐 그런 거야?"
 
사 록:"원래 인간은 카페인이 필요하댔어."
 
넌 고양이라 모르겠지만. 비웃음 비슷한 것을 지었다. 추위도 많이 타는 애가 아이스를 먹는다는 것은... 이열치열 뭐 그런건가보지. 하고 넘겼다. 이열치열 반댓말은 뭘까... 이... 뭐시기.
 
풍선 (GM):이냉치냉 아닐까 록아
 
그릇:이춥저춥
 
가 진:"아니... ... 뭐, 그래. 원래 강아지들한테는 카페인을 먹이면 안 된다길래 물어봤어."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라고 했다. 놀림을 한 번 당했으면 놀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얘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그래도 우리 록이는 귀여우니까 괜찮아. 덧붙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내려나. 그것도 귀여울텐데... ... .
 
사 록:어이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를 툭 밀었다. 날아가려나. 그 정도로 밀진 않았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새 나온 것들을 챙겨서 네게 내밀었다. 차가워, 빨리 받아가.
 
가 진:"야아... ... ."
 
힘없이 주욱, 밀렸다. 물론 밀리자 말자 호도독 다시 쫓아 오기야 했지만. 아이스 초코 같은 걸 받아선 입에 물었다. 조용히 있으면 화 안 내겠지... ... 아니, 딱히 화낸 것도 아니기야 하지만. 아이스 초코가 참... ... 찐하고 그랬다.
 
"차가운 거 싫어?"
 
사 록:"아니?"
 
그냥 심술낸거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라고만 해도 알아서 짐작하고 알아서 귀여워할 거 잖아. 생각 안하고 입에 집어넣은 라떼가 참 뜨거웠다. 목 뒤로 넘겨버리고 나니 한결 괜찮았다. 뜨거웠지만.
 
가 진:귀여운 새끼... ... 조용히 읖조렸다. 들... ... 었으려나? 뭐, 듣든가 말든가. 귀여운 걸 귀엽다고 하는데 문제라도 있나.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보다 아침을 잘 먹어서 그런지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배가 고프질 않았다.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돼가는데... ... 뭐, 마신 것도 많았으니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홀짝댔다.
 
"아, 맞아. 오늘 여기서 불꽃놀이 한대."
 
사 록:"예쁘겠네."
 
불꽃 본지도 얼마 안됐는데. 바다니까 그럴 수 있나. 혼자 또 궁시렁 거렸다. 불꽃이 1년 할당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있을때 많이 보면 좋지. 귀여운 새끼라고 한 값으로 네 귀를 잡아당겼다.
 
가 진:"엉. 어제는 제대로 된 불꽃놀이 같은 건 아니었으니까."
 
이왕 온 거 보고 싶다. 잡아 당겨진 귀를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애가 남는 게 힘밖에 없어서 그런지 아픈 건 잘만 찾아서 잡아 당기는 게 역시 소질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귀가 붉어졌겠지. 쓰읍, 슬프네.
 
사 록:"그럼 갑판으로 나가야겠지?"
 
추울텐데. 너를 돌려가며 옷을 확인했다. 더워보이네, 합격. 그 전에 차가운 초코는 다 마시고 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손만 대도 차가운데 어떻게 마시는거지.
 
가 진:"그렇겠지? 아, 추우려나~"
 
뜨거운 것보다는 확실히 차가운 게 마시기 편했다. 열심히 쫍쫍대고 있다보니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고. 원래 이런 좀 고급져보이는 카페에는 양이 적나. 괜히 입맛을 다셨다.
 
"오늘 좀 열이 올라서 그런지 춥진 않아. 다행인가?"
 
사 록:아, 열 난댔지. 이마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는 티를 내고 싶진 않았는데 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입꼬리가 축 내려갔다.
 
"아플 것 같으면 굳이 안 봐도 되고... 근데 본다고 할거지."
 
가 진:"아니... ... 딱히 아프진 않어."
 
머리에 손이 올라왔다. 살면서 네 손이 시원하게 느껴졌던 적은 거의 손에 꼽혔는데. 열이 오른다 뿐이지 딱히 움직이는 데 있어서 별 에로사항은 없었다. 진짜 아프면 어련히 알아서 너한테 옮겨줄게. 얘기하며 이마에 안착한 손을 잡아 내려 입술을 부벼댔다.
 
사 록:뭐... 무슨 소릴 하는거야. 손을 확 뺐다. 얘가 사람도 있는 곳에서 지금. 귀 끝이 새빨개졌다. 걱정하던 마음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놀라서 심장이 가라앉지도 않았다. 괜히 몸도 뒤로 빼봤다.
 
"손 안 잡아줄거야..."
 
가 진:"그러든가."
 
대충 대꾸하며 도망간 손을 슬슬 찾아가 잡았다. 내가 잡으면 되지 뭐. 쫑알대는 것도 잊지 않고서. 생각보다 말랑한 놈이란 말이지, 생긴 건 온갖 예민 다 떨고 막... ... 하여튼. 그렇게 생겼는데. 여기서 확 뽀뽀 같은 걸 해버리면 도망가려나. 잡다한 생각을 이어나가던 도중 갑자기 선내 곳곳에 붙어있던 스피커에서 땡땡, 하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땡땡, 종소리 이후 선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잠시 후 갑판 위에서 불꽃놀이가 진행된다는 내용으로, 선장은 이 이벤트가 크루즈의 하이라이트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고개를 돌리면 어느 새 창 바깥으로 짙게 깔린 어둠을 목도합니다
 
자, 갑판 위로 올라갈까요? 하이라이트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니
 
슬슬 나가볼까? 그런 제안을 던지고자 당신이 고개를 돌리면... ...
 

어라, 아까까지만 해도 시끄럽던 당신의 애인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서둘러 갑판 위로 이동하는 사람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기억을 떠올려도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목소리 또한 없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말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사 록:"얜 또 어디갔어."
 
하루에 한 번 씩 없어질 생각인건가. 골이 다 띵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 화려한 머리색이 안 보일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걔가 말을 하지 않고 어딜 싸돌아다닐 애도 아니고. 아파서 쓰러졌는데 그걸 누가 밟아서 조그맣게 줄어들었나...
 
칵테일바, 카페, 식당, 2층으로 올라가보아도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전과 같이, 전화도 받지 않네요
 
인파에 떠밀려 잠시 길을 잃고 갑판 위로 먼저 올라간 것일 지도 몰라요
 
갑판 너머로 이동해 볼까요?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짜고도 시큼한 바다 냄새가 너무나도 지겹게 느껴집니다

 
어째서일까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게 아니었나요?
 
당신이 갑판 위로 올라감과 동시에, 펑! 남색의 깊고 푸른 밤하늘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휘황찬란한 불꽃의 파열을 맞이합니다
 
행성이 터지는 것만 같은 눈이 부신 빛의 산란이 몇 차례나 연속해서 쏟아집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흘러나온 걸까요
 
감탄과 환호로 젖어든 크루즈는 무척이나 시끄럽고 열이 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도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해요
 
그 누구도 당신을 신경쓰지 않으며... ...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눈동자 너머로 파고드는 찬란한 빛의 점멸,
 
많은 승객들이 하나같이 축제의 광기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 어째서?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한참동안 인파를 가르고 애인을 찾아봐도 옷자락 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크루즈 실내의 그 어느 공간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죠
 
그렇다면 남은 곳은... ...
 
아, 뱃머리입니다
 
본디 인간의 감이란 인간이 진화를 거듭한 만큼 그 어떤 다른 감각보다도 예리하며 발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쎄한 직감과 함께 뱃머리 쪽으로 이동하면 어둠 속에 파묻힌 저 너머 멀리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을 발견합니다
 
분명... ... 당신의 애인이죠?
 
그는 뱃머리 끝에 서서 난간을 붙잡고 바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부답하며, 시선이 몽롱하고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렸거나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
 
무어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것도 같은데, 작달만한 목소리는 거센 밤바다 바람에 파묻혀 흩날립니다
 
사 록:저게 미쳤나? 바람이라도 한 번 잘못 불면 휘잉하고 바다에 안착할 것 같은 애가 난간을 잡고 뭐하는 것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작지도 않을텐데 무시당했다. 네 쪽으로 가봐야할 것 같았다.
 
그때, 그의 몸이 난간 너머로 기웁니다
 
사 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한끗 차이로 손가락 끝에 그의 팔뚝이 걸리고... ...,
 
아, 다행입니다 간신히 옷자락을 붙잡고 어거지로 끌어당깁니다
 
하마터면... ... 최악의 시나리오에 머리가 아찔합니다
 
정말 큰일날 뻔 했어요
 
당신 쪽으로 기운 그의 몸은 어쩐지 아까보다 열이 올라 불덩이 마냥 뜨겁습니다
 
줄줄 늘어지는 몸이 계속해서 뱃머리를 향합니다
 
아니, 뱃머리가 아니고 바다일까요?
 
사 록:저도 모르게 애를 집어던질 뻔했다. 분명 유리병 같은 내구도인데 이상하게 얘가 아프다고 하면 믿음이 가질 않아서... 그건 그렇고 늘어지려는 몸을 제대로 붙잡았다. 움직이는 통에 힘들지는 않았고 그냥 걸리적거렸다. 한 대 치면 기절할 것 같은데 그렇게까진 하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좀 있어봐..."
 

가 진:고개가 좌우로 힘차게 움직였다. 분명 거절 내지는 반항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네 근력으로 애 하나는 거뜬히 들 수 있다는 사실이었을테다. 안 되는데, 가야 하는데... ... 간간히 말을 이어붙이면 그런 것 쯤이 될 문장들이 흩어졌다. 낭창한 몸체가 축, 처졌다.

 
사 록:이게 지금 어디서 반항이야. 너를 가볍게 들어올려 안았다. 이목이 집중될만한 상태였지만 각자 다 바쁠텐데 뭘. 바르작대며 반항하는 애 하나를 지탱하되 막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했다. 사하라 급이 아니면 안되지, 암.
 
그는 결국 제 풀에 지쳐 잠이 듭니다
 
바깥에서 요란스러운 불꽃축제의 열기가 식을 무렵 크루즈는 다시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어깨에 누굴 들고 있든 간에 크루즈를 빠져나가는 일행들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에 따라 널널히 크루즈를 빠져나온 당신은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타 옆자리에 애를 내려놓습니다
 
가 진: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 듯 눈에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평소에도 비슷한 눈매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서도, 그보다 더한 거면... ... 흐물대는 몸이 제대로 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네게 붙었다. 물, 좀 줘봐... ... 그래도 앞에 있는 걸 인지는 하는 듯 중얼대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 록: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가 진:이리저리 마실 걸 찾아 분주한 얼굴을 턱, 잡아챘다. 기본적으로 힘을 주든 안 주든 비슷한 악력이기야 했지만 다급한 손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마른 숨이 흩어졌다. 찡그려진 미간,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 그 사이로 무턱대고 입술이 부벼졌다. 버석한 입술 사이로 차가운 혀끝이 네 입술을 얇게 스쳤다.
 
사 록:물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지. 그래도 일단 주변을 둘러보기는 했다.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 대가랍시고 오는게 뭐. 이런거였다. 싫다거나 화났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지만 억울하다는 소리다. 찾고 있는데 그 잠깐을 못 기다려주고... 궁시렁궁시렁... 손을 떼어내고 입술도 뗐다. 더 못 잡아채게 두 손을 얌전히 잘 모아잡았다.
 
"야, 가진, 정신 차려봐."
 
가 진:덜컹, 움직이던 버스가 언덕을 급하게 달렸다. 탁한 눈과 네 눈이 마주 닿았다. 높은 기온 덕에 색색, 잘 때나 날 법한 숨이 흘렀다. 아이처럼 가지런히 모아진 손이 얌전했다. 네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마주하고 있던 눈이 느리게 감겼다가 뜨이길 반복했다. 콜록, 마른 기침이 샜다. 기침이 새는 것도 잠시였다. 곧 다시금 툭, 네게 기댄 채로 잠에 들었다.
 
한 바탕 소동 이후로 당신의 애인은 잠잠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잠에 든 걸까요?
 
버스는 언제 급했냐는 듯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굴러갑니다
 
올 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느린 속도로 도착한 버스의 문이 열립니다
 
그를 데리고 객실로 돌아오자면 내내 잠들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입니다
 
휴양을 위해 방문한 바다인데 날마다 축적된 피로만이 허파에 가득 얹힙니다
 
이게 도대체... ... 무슨 일일까요
 
오늘이 짧았던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온종일 곤혹을 치렀던 탓일까요?
 
당신 역시 머리를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잠에 빠져듭니다
 
[ 20XX. 12. 30 AM 02 : 19 ]
 
사 록: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잠결에... ... 근처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문이 닫히고,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발걸음 소리같은 거요
 
반짝, 반사적으로 눈을 뜨면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늦은 새벽입니다
 
옆을 돌아보면 잠결에 들었던 소리의 원인을 밝히리가도 하듯 텅 비어 있습니다
 
그저 주름진 침대 시트만이 그가 이곳에서 잠들어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온기가 전부 날아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 록:정상도 아닌 애가 어딜 갔어.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집에 가면 얠 잡아놓고 잔소리를 한바탕 하든 시위를 하든 해야지. 생각하고 쫓아나갈 준비를 했다. 옷은 챙겨나갔으려나.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몸을 일으켜 현관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자, 어라?
 
현관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신발은 그대로네요
 
혹시... ... 맨 발로 나간 걸까요?
 
... ...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이던 그의 모습이 기억 너머에 아직 생생합니다
 
급하게 객실 바깥으로 나가자,
 
사 록: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 록:저걸 어느 세월에 다 기다리고 앉아있어. 서있겠지만. 계단으로 내려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하나씩 내려가다 마음이 급해지니 두세개 정도는 훌쩍 뛰어넘어갔다.
 
당신은 리조트 바깥으로 뛰쳐나옵니다
 
찬 바람이 뺨을 긁고 지나갑니다
 
얼음을 굳혀 만든 소금이 목구멍을 틀어막는 듯 묘연한 바다의 냄새는 숨막힐 정도로 짜고, 무겁고, 소름끼칩니다
 
어쩌면... ...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새벽의 밤바다는 어둡고도 스산합니다
 
파도의 노랫소리가 꼭 모독적 존재의 속삭임처럼 느껴집니다
 
사방에는 불이 들어와 있는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아 한치 앞을 구분하기 힘듭니다
 
사 록: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모래사장에 수놓여 있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찍힌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선명한 자국, 이건 누가봐도... ...
 
이동 방향을 살피면 저 너머 바닷가 쪽으로 지체 없이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금세 파도 앞에 당도합니다
 
바다를 향해 이어진 발자국을, 보글보글 밀려드는 파도가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군요
 
불안함에 떨리는 눈으로 이곳저곳을 급히 둘러보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닷물과 불안정한 파도를 가르고 바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애인을 발견합니다
 
사 록: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체온을 빼앗긴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항상 창백했던 피부가 조금 더 차가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간신히 뭍으로 건져 올린 그는 그럼에도 자꾸만 헛소리를 합니다
 
가 진:"들리지, 저거... ..."
 
묘하게 침착한 목소리가 추위에 떨렸다. 자꾸 시끄럽잖아. 평소와 같은 말투에 짜증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흐릿한 눈이 자꾸만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상태와는 다르게 침착한 목소리였다. 아니 시발, 자꾸 시끄럽게 사람을 부르잖아... ... 말을 뱉던 얼굴이 순간 네게로 돌아갔다. 맞지 않는 초점과 흩어지는 시선 끝에 네가 닿았다.
 
"안 들려?"
 
사 록: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너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정신 차려봐라. 적어도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막상 애를 찾고 나니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손을 들었다가 네 뺨을 토닥였다. 맘 같아선 휘갈기고 싶은데 쟤는 가진이니까... 아프지 않아도 비실비실한 애니까...
 
가 진:"야 너는... ..."
 
말이 중간에 끊겼다. 얼굴을 토닥이는 손길에 얌전해진 것도 잠시였다. 다시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품에서 나가려고 바둥댔다. 그래봤자 단단히 잡힌 게 빠져나갈 수 있을 리 없겠지만. 물에 젖은 몸이 낭창거렸다.
 
사 록:"가긴 어딜 갈라고 그래. 죽고 싶냐?"
 
나가려고 할 수록 애를 잡은 손에 힘이 더해졌다. 이 정도로 잡았다간 부러지겠다 싶을때쯤 겉옷을 벗어 덮어줬다. 그거 뭐냐. 저체온증이 위험하다던데. 안 그래도 저체온인 애가 겨울밤에 물에 젖어있으니 위험하고도 남았다. 제정신이나 조금 차려줬으면 좋겠다.
 
한참을 발버둥쳤을까요,
 
지친 모양인지 당신에게 붙잡혀 얌전히던 그의 눈에 흐릿하게나마 생기가 돌아옵니다
 
가 진:"... ... 개추워 시발... ... ."
 
일단 무슨 일인지 모르겠고, 정신을 차리자 말자 비집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낑낑대며 네 품에 부비적댔다. 애초에 보이는 건 바다고 축축한 건 물인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여튼 그보다 일단은 추웠다. 좀 서글퍼졌다.
 
"시발 대체 내가 여기 왜 있냐... ... ."
 
사 록:이건 또 뭐람.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안겨드는 몸을 얼떨결에 안아줬다. 차가운 것을 안고 있으니 속까지도 시렸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눈을 마주했다.
 
"너 갑자기 자다가 여기까지 나와서 바다에 들어가고... 아 시발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가 진:"그럼 나는 어떻게 알아... ..."
 
서러운 눈썹이 팔자가 됐다. 주위를 둘러보니 쟤가 한 말이 틀린 것 같진 않아서 더 서러워졌다. 일단 얼어 죽을 것 같았으므로 최대한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네게 꾹, 안겼다. 네가 추운 건 사실... ... 뭐 별 수 있나. 견디고 자소서 고난과 역경란에 쓰라지.
 
생각해보니... ... 이상합니다
 
이 바다는, 리조트는... ... 무언가 이상합니다
 
본디 인간의 감이란 인간이 진화를 거듭한 만큼 그 어떤 다른 감각보다도 예리하며 발달되어 있기 마련이었죠
 
그렇지 않나요?
 
사 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 ...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한 번에 많은 일들을 겪은 탓에 머리는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 록:애를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멈췄다. 그래도 일단 켕기는 것이 많은 건 사실이고, 애까지 물에 담가졌다 나왔으니 위험한 것도 맞는 거였다. 네게 덮어준 겉옷을 더 열심히 여며줬다.
 
"괜찮을 것 같으면 집 가자. 안 괜찮으면 집 가고."
 
가 진:"그래도... ... 새벽인데. 너 운전 위험하진 않겠고?"
 
일단 내가 춥고 뒤질 것 같은 것도 문제긴 했는데, 네가 걱정되는 것도 맞는 수순이라서. 한 번 더 낑낑대며 고개를 들어 널 바라봤다. 이럴 때 뭣보다 얼굴 한 번 보는 게 제일 마음이 놓였다. 힘줘서 안아라도 주고 싶었는데, 일단 몸이 바들바들 거려서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사 록:"괜찮아. 덕분에 잠깼어."
 
여기 더 있다가 또 너 나가고 하면 그게 더 골치 아파. 네 이마에 입술을 댔다. 추워보이기는 했지만 히터라도 세게 틀어두면 괜찮지 않을까. 감기 걸리면 병원에라도 넣어두지 뭐. 위험하구나! 하고 생각한 것치곤 굉장히 안일한 태도였다.
 
가 진:네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되기야 하지만... ... 뭐, 쌍방 걱정으로 치면 내가 하는 것보다 네가 하는 게 더 말이 맞기야 했다. 원래도 빠르게 수긍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이럴 때조차도 그럴 줄은 몰랐다. 일단은... ... 추워 죽을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뿐이었다.
 
"... ... 집 가서 자자, 그럼. 나 졸려."
 
우리는 즉시 이 리조트를 떠나기로 합니다
 
바다라면, 이제 지긋지긋하죠?
 
심각해보이는 그의 상태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옷을 덮어뒀으니 버텨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차에 올라타 한참을 달립니다
 
끝도 없이 펼쳐질 것만 같던 바다가 모습을 달리하고, 옷감과 차체에 달라붙어 있던 소금 냄새가 옅어질 무렵... ... 동이 터오릅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를 때쯤 그의 떨림도 점차 멎기 시작합니다
 
꽤나 안정적으로 변한 호흡소리에 마음이 놓입니다
 
덜컹, 방지턱을 밟은 차가 흔들림과 동시에 라디오 너머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뉴스 채널에 맞춰두었던 모양이에요
 
뉴스 채널: "긴급 속보입니다. 모 호화 리조트의 앞바다에서 새벽결에 떠밀려온 30대의 익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 및 관계자들은 사인을 자살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발견된 유서가 없는 점을 미루어…"
 
"... ... 어디쯤 왔어?"
 
빠르게 흘러가는 뉴스의 소음 너머로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애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창백했던 피부에 혈색이 돌며, 어쩐지 개운해보입니다
 
손끝으로 버튼을 눌러 라디오 전원을 끕니다
 
당신은 대답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END1.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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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GM):사,,,
랑한다,,,
사랑아,,,
가슴벅찬,,,그이름,,,
ㅂㅜ르고불러도,,, 모자랄사람아... ,,,,
 
그릇:이상한 사람일세

 

재밌었고요... 한 여덟~ 일곱 시간 끊어서 했던 거 같습니다... ... 다들 데이트 하러 겨울 바다로 오세요 ^^ 사록 너무 귀여워서 볼따구 제가 다 호로롭 먹어버린 듯 ; 울 애기 볼따구 마싯어 념념쓰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