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의 부름(COC) TRPG LOG

 

 

 

Last Thursdayism

 

선태영 X 선 린

 

PC: 선태영

2020.03.23 ~ 2020.05.08

선 린 :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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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thursdayism
 
BGM : snow blossom by ensemnono ◁Link
 
평소와 같이 맞이하던 어느 평범한 밤, 밤새 불편하게 뒤척이던 당신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얕은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마저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깨어버리고 말았지만요
 
숨통이 죄어지는 답답함에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순간, 속눈썹에 맺혀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선연합니다
 
당신은... ... 울고 있었습니다
 
고여있던 눈물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과 함께 쉴새없이 굴러 떨어집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악몽을 꾸었나 싶어도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북받치는 슬픔에 공연히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형을 흔들어 깨워봅니다
 
당신의 형은 조금 당황한 손길로 울고 있는 당신을 달랩니다
 
당신을 보듬어주는 더없이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금 잠에 빠져듭니다
 
이번에는 조금 깊이... ...
 
...
 
그렇게 눈을 감은지 꽤 지났을 즈음,
 
들려오는 것은, 얕은 물에 고막까지 잠겨들어 이내먹먹히 침몰되고 마는 소리
 
입술을 벌려보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눈꺼풀을 들어올려보지만 시야에 차는 것은 눅눅한 어둠 뿐
 
냉기에 온 몸이 얼어붙듯 끔찍한 맹추위가 지속되다가도, 피부를 녹여낼 듯 살인적인 더위가 정신을 덮칩니다
 
그런 이변 속에서도 이상하게 고통스럽다거나 아프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선태영: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잠시간의 간극 끝에 희미한 기억 건너편에서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안녕, 목요일에 다시 만나자.'
 
그 익숙한 목소리를 끝으로 맹추위도, 무더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요?
 
모든 감각이 모호해질 무렵, 불현듯 당신은 쏟아지는 정적과 동시에 정신을 차립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 익숙한 어둠이네요
 
아직 밤인가? 하는 막연한 의문과 함께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으면 팔이 채 다 펴지기도 전에 두꺼운 벽같은 천장에 가로막힙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손끝에 감기는 것이 나뭇결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천장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고개만 간신히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떤 좁은 방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등 아래는 꽤나 푹신푹신해서 싸구려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행운
기준치: 40/20/8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불현듯 천장을 밀어 열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칩니다
 
선태영:누가 날 가둬둔거야. 멍하니 나무 천장에 손 끝을 대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 놓고 있다보니 잠깐 스쳐지나간 생각이 다시 났다. 밀어볼까... 그래서 밀어봤다.
 
그대로 힘을 주어 밀면 천장은 의외로 쉽게 열립니다
 
당신은 틈 사이로 터져 나오는 환한 빛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이 열리고, 당신은 문득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탁한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녹빛 하늘에 커튼처럼 드리워진 아름다운 오로라
 
바람에 스치우듯 일렁이는 오로라를 드문드문 가리며 커다란 함박눈이 온 사방에 흐드러져 쏟아집니다
 
이곳은 마치 천국의 가장자리를 떼어다 붙인 공간 같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정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노라면 금세 당신의 무릎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쌓이는 눈을 털어내려 고개를 떨군 그때, 당신은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 ... 이건 캡슐인가요?
 
아니, 캡슐이 아니라 '관' 같습니다
 
방금까지 갇힌 듯 누워 있던 좁은 방은 실은 관이었던 것입니다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rolling 1d3
 
(
1
 
)
 
 
=
1
 
관 주변에는 눈송이를 머금은 싱싱한 생화 무더기가 깔려 있고, 그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누워있습니다
 
입고있는 옷감이며 피부에는 얕게 흰 눈이 쌓여있네요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당신의 형은 조용히 잠에 들어있습니다
 
눈이 쌓여서일까요, 안색이 조금은 파리해보이는 채입니다
 
선태영:왜 여기 누워있지? 고개를 숙여서 형을 훑어봤다. 눈 오는데 누워있으면 감기 걸릴텐데. 팔을 마구 흔들었다. 사실 깰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선 린:비몽사몽간에 흔들리는 게 느껴져서, 눈을 반쯤 떴다. 이렇게 깨울 사람이 없을텐데... ... 생각하며 고개를 올리면 익숙한 얼굴이 자리했다. 놀란 얼굴을 하곤 눈을 깜빡였다. 그냥, 별 건 아니고... ... 조금 의아했다.
 
"태영아?"
 
선태영:"형, 왜 여기서 자..."
 
팔을 잡아당겼다. 앉히려는 의도였지만 힘은 별로 들어가있지 않았다. 어차피 일으켜지지도 않을거고 일으키려고 하는구나 하는 순간 형이 일어나줄테니까.
 
선 린:주욱, 팔을 잡아 당기는 무게에 몸을 일으켰다. 앉아서는 몸 위에 쌓인 눈을 털었다. 손을 올린 김에 선태영 위에 쌓인 것도 털어줬다. 우리 태영이, 춥겠다.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애를 안았다.
 
"모르겠다. 형도 눈 떠보니까 여기서 자고 있었는 걸."
 
선태영:어디서든 잘 자는 것도 재능이었다. 얌전히 품 안에 안겨서 큰 눈을 껌뻑거렸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이게.
 
"나 관에 있었던 것 같아..."
 
선 린:"그래도 춥진 않았겠네."
 
얘기하며 흘깃, 네 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관을 바라봤다. 안심하라는 듯 등을 몇 번 쓰다듬으며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여전히 작고 귀여웠다.
 
선태영:
심리학
기준치: 85/42/17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의 형은... ... 어쩐지 당황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선태영:왜 당황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안아주니까 꽤 불안했던 것이 가시는 느낌이라 잠자코 안겨있기로 했다.
 
"형은 안 추웠어?"
 
선 린:"그냥,... ... 괜찮았던 거 같아. 지금은 좀 추운 거 같기도 하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서투르게 사람을 걱정하는 것도, 가만히 안겨있는 것도 전부 사랑스러웠다. 귀엽다고 정수리라도 씹어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탁 트인 공간이었다.
 
끊임없이 펼쳐진 드넓은 설산 위로 반짝이는 눈송이들이 빽빽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고, 두 사람이 앉아있는 가까운 거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2층 짜리 목재 주택이 한 채 덩그러니 지어져 있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선 린:"우리 태영이는 안 추워요?"
 
괜히 다정하게 물으며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추운 데 오래 있었는데, 우리 애가 추워하면 어떡하지. 온통 머릿속에 걱정 뿐이었다.
 
춥다, 혹은 춥지 않다... ... 어떤 답을 내어놓기도 전에 당신은 자그마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눈발이 흩날려 떨어지는 설산의 한가운데임에도... ... 추위만큼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선태영:"...안 추워."
 
왜지?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괜히 무서워져서 형에게 더 잘 달라붙었다. 여기 계속 있어도 될지가 걱정이었다. 이상한 상태인 건 맞는데 이게 내 탓인지 환경 탓인지 모르겠다.
 
선 린:춥지 않다는 말에 놀란 얼굴이 됐다. 하지만 애한테 당황하는 얼굴을 보이고 싶진 않아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안긴 몸을 천천히 떼어내며 웃었다. 손을 잡고, 이끌고 그냥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더 있다간 감기에 걸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주택 쪽으로 갈까?
 
선태영:갈래. 주택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끄덕였다. 저기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지만 여기보단 나을 것 같았다. 이 눈이 뭐인지도 모르는데 계속 맞고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춥지 않은 날씨에 눈이 내리려면... 같은 가정을 내세운 글을 몇가지 읽은 적이 있었다. 다 좋지 못한 경우의 수였던 기억이 났다.
 
목재 주택의 문은 양문형으로, 굳게 닫혀있지만 잠궈져 있지는 않습니다
 
노크를 하거나 주인을 불러도 안쪽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선 린:음, 노크해도 사람이 없네. 대충 중얼거리며 문에 손을 대고 쭉, 밀었다. 잠궈져 있지 않은 탓에 그대로 열리는 문이 어쩐지 반가웠다.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진 않으니까. 일단 애 몸도 녹여야 하고. 생각하며 손을 잡아 당겼다.
 
"들어가자."
 
어쩐지, 익숙해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선태영:"사람이 없는걸까?"
 
답이 없는 안 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형에게 매달렸다. 형을 붙잡고 걷다보니 두 걸음에 한 번 꼴로 다리가 꼬였다. 최대한 아닌 척 집 안으로 들어섰다.
 
목재 주택 안으로 들어서면 아예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지 내부는 상당히 고요하고 적막하네요
 
불은 꺼져 있지만 바깥이 밝은 탓에 전혀 어둡지 않습니다
 
주택 내부는 굉장히 서늘해보이지만, 글쎄요 여전히 춥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습니다
 
선 린:"혹시 모르니까 형이 위에까지 둘러보고 올게."
 
1층에는 뭐가 없는 것 같아 보이니까. 덧붙이며 복층의 위를 바라봤다. 애를 혼자 두고 가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둘러보고 오는 것도 도움이 분명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을 수 있어?"
 
선태영:"조심해서 갔다와야 돼..."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가만히 있는건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형은 가끔 과보호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손도 살살 흔들어줬다. 오히려 혼자 가는 형이 걱정이었다.
 
765 (GM):그렇게... 주택의 1층을 적당히 조사할 수 있게 된 태영!
주택의 1층에는 거실과 주방, 방으로 추정되는 문 두 개와 테라스가 있는데!
어디부터 가볼 것인가!
따단.
 
선태영:형이 올라간 사이 1층을 보기로 했다. 자리를 가만히 지키기로 한 적은 없으니까. 거실을 둘러봤다.
 
거실의 바닥에는 두터운 카페트가 깔려있고, 그 위로 앉은뱅이 테이블과 4인용 가죽 소파가 놓여있습니다
 
맞은 편에는 불을 떼울 수 있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군요
 
선태영:소파 크다... 테이블 위에 뭐가 있을 확률이 높은 법이었다. 테이블 위를 뒤적거려봤다.
 
나무로 만들어진 평범한 테이블로, 소파의 높낮이에 맞춤식으로 제작된 듯 하네요
 
테이블 위에는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습니다
 
신문을 펼치면 '사상 초유의 폭설사태. 온 지구를 덮치다.'라고 적힌 헤드라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몇달 째 매서운 겨울이 지속되며 빙하기와 관련된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 파묻혀있던 진실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지구가 지금까지의 46억년간 총 열 한 번의 빙하기를 맞이했으며, 이러한 '빙하기'란 지구 표면의 약 3분의 1이 얼음으로 뒤덮혀있는 상태를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몇년째 이루어진 이상기후의 여파로 사상 초유의 폭설사태가 지속되면서 온 지구가 눈과 얼음에 뒤덮히기 시작했다. 관련학과의 모 대학 교수는 이 사태를 단순한 빙하기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으며…….]
 
신문을 뒷장으로 넘기면 그 내용은 끊어져 있습니다
 
발행 날짜 또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태영:빙하기... 신문을 뜯어먹을 기세로 기사를 읽었다. 신문마저 의미심장하고 이상했다. 아무튼 이상해, 아무튼. 집 밖을 슬쩍 곁눈질했다가 신문을 내려놓았다. 소파나 마저 보자.
 
평범한 가죽 소파입니다
 
'엘니뇨와 라니냐', '물 속에 잠기는 지구', '높아지는 해수면', '에콰도르의 서부 열대 해상의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 등 각종 이상 기후와 관련된 책자들이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습니다
 
책을 펼치거나 읽어도 특별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높아지는 해수면' 책을 펼치면 책장 틈에서 사진이 한 장 떨어집니다
 
나풀나풀 발치에 떨어지는 사진을 주워들면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인쇄된 사진이네요
 
조금 어색한 표정의 선 린과 선태영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인화되어있습니다
 
별다른 메모가 적혀있지는 않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 사람의 뒤로 나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속의 창문 바깥으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네요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갑작스럽게도, 위화감이 당신을 덮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은... ... 이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없는 걸요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이건 또 뭐야. 사진을 들고 께름칙한 얼굴로 서있었다. 형이랑 이런 사진을 찍은 적은 없는데... 형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사진을 조금 더 보다가 벽난로 쪽으로 갔다.
 
소파의 맞은 쪽 벽면에 마련되어 있는 벽난로입니다
 
안쪽으로 얕게 쌓인 잿가루의 흔적이 보이고, 불씨에 그을린 듯한 까만 자욱도 군데군데 눈에 띕니다
 
꽤 사용감이 있어보이네요
 
벽난로 위에는 성냥 두 갑이 놓여있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불 피울 수 있겠네. 춥진 않지만 일단 알아뒀다. 주방 쪽엔 뭐가 있을지 조금 궁금했다.
 
평범한 가정집 내지는 별장에나 있을 법한 아일랜드 형식의 주방입니다
 
선반에는 물기가 묻어나지 않은 식기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있고, 냉장고 안쪽에는 몇가지 요리 재료들이 들어있습니다
 
그 외에 딱히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선태영:예쁜 주방이네. 그냥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방이 두 개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 하나의 문을 열었다.
 
첫번째 방의 문은 살짝 열려있었습니다
 
방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면 아, 침실이었습니다
 
넓은 방 한 켠에는 침대와 옷장, 커피테이블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단촐한 구성이라 어쩐지 텅 비어보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드네요
 
선태영:형한테 꼭 필요한 방이었다. 형은 자지 않으면 안된다! 인 사람이니까. 침대를 가서 쿡쿡 찔러봤다.
 
군더더기없이 단정하게 정리되어있는 침대입니다
 
어두운 계통 색상의 침구가 단아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침대 맡에는 불이 꺼진 갓 모양의 스탠드가 놓여있습니다
 
스탠드 앞쪽에는 탁상용 달력이 놓여있네요
 
달력은 8월에 펼쳐져 있습니다
 
바깥에 저토록 눈이 쏟아지고 있는데 8월일 리가 없지요
 
때문에 당신은 별다른 대수로움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선태영:괜찮은 침대네. 형이 내려오면 말해줘야지. 옷장을 두리번거렸다.
 
하얀 색상의 목재로 만들어진 옷장입니다
 
여닫는 형식의 양문형 옷장 아래 추가적으로 옷장 서랍 두 칸이 달려있습니다
 
옷장의 문을 열면 얇은 코트나 두터운 겉옷, 늦여름에 걸칠법한 가디건 등의 아우터들이 섞인 채 걸려있습니다
 
계절 별로 정리해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걸려있는 옷들 중 대다수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사이즈라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첫 번째 서랍에는 스웨터나 폴라티, 반팔 셔츠등의 옷가지가 개어져있고 두 번째 서랍에는 각종 하의가 정돈되어 들어있습니다
 
본 적도, 입어본 적도 없는 듯 처음 보는 옷들이지만 서랍 속의 옷들 또한 당신의 몸에 맞을 법한 사이즈로 보입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서랍 구석에서 익숙한 옷가지를 한 벌 발견합니다
 
이 옷은 당신의 기억 속에 너무 명확히도 존재하는 옷입니다
 
당신이 다니던 학교의, 당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린, 분명한 당신의 교복입니다
 
선태영:여기 왜 내 교복이 있어? 꺼내서 살펴보고 싶었지만 너무 꺼림칙했다. 진짜... 진짜 별로인 것 같아. 그냥 다 이상했다. 옷장을 빨리 닫아버렸다. 커피 테이블이나 구경하고 방을 나가버릴 생각이었다.
 
홍차 티백이나 녹차,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는 커피 테이블입니다
 
몇 가지의 과자와 핫초코 믹스 같은 것들도 눈에 보이네요
 
한 구석에는 연분홍색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필름 두어 장이 놓여있습니다
 
선태영:아까 봤던 사진 생각이 났다. 저런 카메라로 찍은 거겠지? 생각은 대충 끝맺고 다른 방으로 가봤다.
 
두 번째 방의 문을 열면 창고 대용으로 쓰이던 공간인듯, 몇가지 잡동사니와 함께 구석에 쌓여있는 장작더미를 발견합니다
 
일주일은 족히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작을 사용해서 거실 벽난로에 불도 떼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선태영:벽난로에 불을 때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춥지 않지만! 그래도 장작이 충분하다는 걸 기억해두기로 했다. 또 어디가 남았더라... 고민하면서 테라스로 갔다.
 
통유리로 처리된 테라스입니다
 
화분이 몇가지 놓여있지만 대다수의 식물들은 말라 비틀어져있거나 시들어있습니다
 
테라스 바깥으로는 여전히 무거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드리워진 설산의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탁한 회색의 하늘만이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는 당신과 형, 오직 둘 뿐인 것만 같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테라스 바깥에서 눈 속에 파묻힌 쇠꼬챙이 하나를 발견합니다
 
쇠꼬챙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조형물의 일부분처럼 보입니다
 
나가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빼곡이 쏟아지는 눈들을 헤치고 나가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 린:대충 2층을 전부 둘러본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애가 잘 있는 지가 가장 걱정됐기 때문에, 조금 급한 발걸음이기도 했다. 내려와서 여기저기 기웃대다보니 테라스에 있는 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선태영:"저기 뭐가 있어서 보고 있었어."
 
저기 있잖아, 쩌어기. 혹시라도 못 볼까봐 손도 쭉 뻗어서 쇠꼬챙이를 가리켰다. 저게 뭘까. 그걸 조금 더 유심히 보다 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2층엔 뭐 있어? 여긴 장작이랑 침대 있어."
 
선 린:"별 거 없었어. 궁금하면 오늘은 쉬고 내일 같이 올라가서 볼까?"
 
얘기하며 애의 어깨를 살살 감싸서 거실로 끌어들였다. 테라스는 눈이 오는 만큼 추우니까. 애가 춥진 않다고 했던 거 같지만, 그래도... ... 혹시 모를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별 거 아니겠지. 안 추워도 감기 걸릴라. 장작이라도 떼울까?"
 
선태영:안 추운데 굳이? 형이 그래야 마음이 놓이겠다고 하면 상관 없기는 했다. 고민하는 척 으음... 말을 늘이다 그럴까? 하고 덧붙였다. 그래봤자 형이 불 붙이는 걸 구경하는 정도밖에 하지 않을테니까 잃을 건 없었다. 장작이 있던 방 쪽으로 형을 이끌었다.
 
선 린:이끄는 데로 끌려가서, 장작을 대충 벽난로에 집어 넣고는 불을 떼웠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지 아닌지는 잘 모르는 채였다. 그래도 아마 대충 책에서 본 것 대로 했으니 맞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불을 떼우니 그대로 불이 올라오는 것에 감탄하기야 했지만.
 
"따뜻하다. 사실 내가 조금 추웠거든."
 
선태영:불 피우는 걸 구경했다.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는 거라니까. 형은 뭐든 일단 곧잘했다. 무능의 원인으로 손색이 없었다. 형이 추웠다길래 팔을 문질러줬다. 대충 도움이 됐으면 싶었다.
 
"추우면 말하지 그랬어."
 
선 린:"밖에 눈이 저렇게 내리는데, 안 춥긴 힘들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살살 팔을 문질러 주는 행동이 퍽 귀여웠다. 말해도 태영이 안 춥다 그랬으니까. 칭얼대는 거보단 이게 낫지. 대꾸하며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이 펑펑 오는 바깥을 흘깃대면 예쁘기도, 서럽기도 했다.
 
"눈, 많이오네."
 

엄청 많이.

 
선태영:"형 추워서 어떡해."
 
머리를 쓰다듬기엔 조금 불편하겠지만 옆에 기대앉았다. 난 더워도 형이 추우면 불 피우는 거 좋아. 이불을 잘 덮고 있다보면 안 추울지도 몰랐다. 소매를 잡고 살살 당겼다.
 
"저기 침대에 이불 있어. 가지고 올까?"
 
선 린:"그정도로 춥진 않아. 음... ... 뭣하면 역시 침대로 갈까?"
 
말해놓고 어감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따뜻하게 난로에 불도 붙여놨으니 침대를 뒹굴대며 쉬고 싶었다. 따뜻한 것도 마실 수 있으면 겸사겸사 이득인 거고.
 
"다른 의미 아니고, 쉬는 게 좋잖아."
 
선태영:"나도 쉬는건 좋아."
 
다른 거 말구. 진지하게 형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형이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어도 다른 생각 같은 건 날 일도 없었을텐데. 한숨을 푹 내쉬며 잡아당겼다. 저기 침대 있어.
 
선 린:네가 꾹꾹, 팔을 이끄는 곳으로 가니 잘 정돈된 침실이 나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생각한 대로 따뜻한 걸 마실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경각심없이 그냥 들어온 집에서 막, 이런 저런 걸 하는 건 목숨에 위협이기야 하겠지만,... ... 뭐. 자연스럽게 침대에 몸을 굴리며 물었다.
 
"우리 애기, 코코아 먹을래, 코코아?"
 
선태영:"응. 먹을래. 형은 뭐 먹어?"
 
옆에 누워 발을 동동거렸다. 코코아는 추울때 먹는게 최고지만 대충 눈이 오고 있으니 됐다 싶었다. 눈도 오고 코코아도 먹고... 크리스마스 같았다.
 
선 린:"형도 똑같은 거 먹을까?"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커피는... ... 벌써부터 좀 졸리니까 패스. 말랑 폭신한 핫초코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여기 앉아 있어. 바로 옆에 있음에도 걱정된다는 듯 침대맡을 톡톡, 쳤다. 손을 뻗어 핫초코 믹스 두 개를 집었다.
 
선태영:똑같은 걸 먹는것도 좋았다. 고개를 신나게 끄덕였다. 앉아 있으랬는데 누워있었다. 이 정도 말 안 듣는 건 뭐라고 하지도 않을걸 알고 하는 짓이었다. 아마 이대로 누워서 마실거야! 해도 그러고 싶으면 그래야지, 해줄거라 갑자기 기고만장한 기분이 됐다. 이렇게 버릇이 나빠지는 건가 싶었다.
 
선 린:침대를 구르고 있는 게 퍽,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물병을 따 커피 포트에 넣었다. 물이 끓는 동안 흰 머그컵 두 개에 핫초코 믹스를 부었다. 물이 끓기까진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금방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핫초코가 들려졌다. 자. 네게 컵을 건넸다.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선태영:"안 뜨거워."
 
김이 좀 올라오길래 걱정했는데 막상 잡고 보니 따뜻하기만 하고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시면 꽤 뜨거울 것 같아 마시지는 않았다. 두 손으로 머그컵을 꼭 쥐고 컵과 형을 번갈아봤다.
 
선 린:"아, 그렇지... ... ."
 
춥지도 않다고 그랬는데. 중얼대며 머쓱하게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머그컵을 입에 댔다가 혀가 데였다. 커피 테이블에 놓인 사진기에 자꾸만 눈이 갔다. 있잖아, 태영아. 형아가 진짜 뜬금없다는 거 아는데.
 
"사진 찍을래?"
 
선태영:"좋은데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은 갑작스러운 소리를 잘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긴했다. 사진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까 거실이었나... 에서 찾은 사진이 생각났다.
 
"나 아까 형이랑 찍은 사진 봤는데."
 
선 린:"너랑 나랑?"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게 있었으면 보여주지. 대꾸하며 핫초코를 호호 불었다. 이러면 조금 식으려나. 아니 그냥, 괜히 사진기가 있길래 찍고 싶어서 그랬지. 얘기하다 핫초코를 한 입 마셨다. 아까보단 한결 식어있었다. 머그컵을 테이블 위로 내려 놓곤 손을 뻗어 사진기를 들었다.
 
"눈 예쁘게 오니까. 그거 배경으로 찍어서 들고 다니게."
 
선태영:처음 보는 거라서 놀라서 그랬지... 웅얼대며 옆에 컵을 내려놓았다. 눈 배경 사진이면 형이랑 어울리고 얼추 괜찮을 것 같았다. 사진기를 같이 만지작거렸다.
 
"좋아. 예쁘게 찍어줘."
 
선 린: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네 몸도 살살 일으켜줬다. 그런 걸 잊을 리는 없었다. 나풀나풀 눈이 내리는 창문 가까이로 널 이끌었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대충 하나, 둘, 치즈! 같은 말을 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애기가 안 예쁠 리가 없지."
 
선태영:"형이 안 예쁠 리가 없지."
 
말을 따라하며 크게 웃었다. 해도 지고 눈도 오고. 운치 한 번 좋은 날이었다. 창문 밖을 한참 넋놓고 보다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우리 이제 자?"
 
선 린:내 말투를 따라하는 게 맹랑했다. 귀여워서 당장 볼이라도 깨물고 싶었는데, 그러면 울상일 게 분명하니 참았다. 대충 뽑혀져 나오는 사진을 팔랑팔랑 흔들다 테이블 위로 놓았다. 남은 핫초코를 입 안에 털어 넣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우리 테영이 왜, 심심해요?"
 
선태영:"쪼오끔?"
 
많이 말고. 더 이상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다 조금 지친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한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형을 살살 잡아당겼다. 이런 걸 조르는 편은 아닌데.
 
선 린:"그럼 조금만 장난치다 잘까."
 
못 이기는 척 몸을 침대 위로 늘어트렸다. 손을 뻗어 네 볼을 만지작댔다. 역시 말랑했다. 뭐 하고 놀지? 얘기하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네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러곤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선태영:놀라서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한 짓이 맞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자마자 눈썹이 축 쳐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계속 보고 있다보면 형이 사과할 것 같았다. 그건 별로여서 거의 억지로 인상을 폈다.
 
선 린:"놀러 온 것 같다. 그치."
 
점점 울상이 돼가는 얼굴을 보고도 마냥 웃고만 있었다. 손끝으로 네 미간을 살살 누르며 한 번 더 입술에 쪽, 하고 뽀뽀했다. 한 번 더 기함하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자기 위로 엇비슷한 걸 했다.
 
"아닌 건 알지만."
 
선태영:"맞아. 우린 여기 왜 온걸까?"
 
관도 있구 집도 있구...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또 입을 대길래 어깨를 툭 쳤다. 무턱대고 싫은 건 아닌데 조금 그랬다. 좋다고 하기에도 싫다고 하기에도 다 애매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도 싫다고 말이라도 하면 좀 괜찮지 않나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고...
 
선 린:"일단, 뭐... ... 물을 사람도 없으니까. 대충 상황이 정리 되면 찾아보는 게 어떨까?"
 
네 말에 오랜만에 진지한 소리를 뱉었다. 지금 둘이서 머리를 싸맨다고 해서 무슨 묘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치 눈에 모든 게 파묻힌 듯 아무것도 없는데. 이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다.
 
"아니면 역시 조금 이상하고 예쁜 꿈이라고 생각할까."
 
선태영:"진짜 꿈일지도 몰라. 눈이 오는데 춥지도 않잖아."
 
형은 춥다고 하기는 했지만. 형에게 잘 붙어누웠다. 붙어있다보면 따뜻해지겠지. 사실 꿈이라고 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있으니 조금씩 품에 파고드는 꼴이 됐다.
 
선 린:"쉽게 생각하고 있자."
 
말을 뱉으면 파고드는 몸체가 있었다. 손을 뻗어 그대로 등을 쓰다듬었다. 별일 없을 거야. 별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우스갯소리였다. 사실 이런 허허벌판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냐마는. 조금 안정이 된 것 같았다. 귀여운 우리 태영이. 네 머리통에 괜히 입술을 붙였다. 이러면 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겠지.
 
"잘 거야?"
 
선태영:"좀 졸린 것 같기도 하구..."
 
형은 어차피 매일매일이 졸리니까 궁금해하지 않았다. 입술이 붙길래 으응, 투정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거절해놓고 형의 팔을 잘 끌어다가 뒤통수에 붙이는 게 조금 아다리가 안 맞는 행동이긴 했지만... 형은 뭐든 좋아할테니 됐나 싶었다.
 
"잘 자?"
 
선 린:무슨 짓을 해도 귀엽게만 보이는 게 뭔가 씌였나, 싶었다. 아니 뭐가 씌였으면 그냥 곱게 그대로 살지 뭐. 손에 닿는 네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역시 부드러웠다. 자그마한 소동물 같은 느낌 같기도 했다.
 
"잘 자. 안녕, 내일 만나자 우리 애기."
 
... ...
 
...
 
당신은 어제까지만해도 느끼지 못했던 추위와 함께 비교적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꼭 사라져있던 감각이 되돌아온 것만 같ㅌ습니다
 
옆자리에는 소중한 사람, 형이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추위 탓일까요? 안색이 조금 더 창백하다거나 파리해보인다거나... ...
 
난로가 꺼져 있는 건 아닐까요?
 
선태영:어제는 별로 안 추웠는데. 팔을 살살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추운데 형은 더 추울거였다. 저렇게 창백해졌을 정도면 얼마나 추운거지? 이불을 잘 덮어주고 난로를 확인하러 움직여봤다.
 
어제 형이 간편히 떼워놨던 벽난로가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 어귀에서 봤던 목재를 조금만 넣어주면 괜찮을 거 같은데... ...
 
선태영:나무가 어딨었지... 불을 피울 줄 모르니 형을 깨우든가 빨리 나무를 집어넣든지 해야했다. 근데 형은 잘 안 깨니까 나무나 집어 넣어야지. 한두 조각 정도를 집어다 넣었다. 불이 잘 켜지겠지. 두근두근하게 불을 지켜봤다.
 
불이 그대로 가만, 있자 점점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성공했나봐요!
 
기쁨에 주위를 둘러보면 테라스 창문 바깥으로 쏟아지는 눈발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갑니다
 
이젠 쏟아지다 못해 퍼부어지는 수준이네요, 이러다 온 세계가 눈에 덮여버리는 건 아닐까요?
 
맑게 걷힌 하늘에 휘황찬란한 오로라가 넘실대고, 사방으로 흐드러지는 솜털같은 폭설의 향연은 이질적이지만 꽤나 아름다워서 한동안 시선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던 와중 당신은 어쩐지 문득 어제 살피지 못했던 주택의 2층이 궁금해집니다
 
마침 윗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도 보이고요
 
선태영:형이 내일 가자고 하긴 했는데. 계단 위쪽을 흘끔거렸다. 꼭 같이 가잔 말은 안했었으니까 지금 가도 괜찮을 지도 몰랐다. 안 괜찮을거면 애초에 가지 말라고 했겠지. 올라갈까 말까 첫번째 계단에 발을 세번쯤 올렸다가 내렸다. 아냐, 그래도 가볼래. 형이 있는 방 쪽을 한 번 계단 위를 한 번 보곤 그대로 올라갔다.
 
나선형의 계단을 타고 목재주택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곳은 아주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투명한 통유리로 처리된 스테인드 글라스의 천장에서 다채로운 색감의 빛이 터져나오는 탓에 퍼부어져 내리는 형형색색의 눈들을 그대로 맞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천장 안쪽에는 군청색의 도료를 이용하여 섬세하게 그려진 황도 12궁이 눈에 띕니다
 
2층의 중앙에는 남색의 커다란 원형 카페트가 깔려 있고, 한 구석에는 접힌 망원경이 놓여있습니다
 
욕실과 화장실도 2층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선태영:욕실이랑 화장실이 2층이면 좀 동선이 힘들지 않나? 건축이나 뭐 그런 쪽의 지식은 없어서 그냥 생활하기 힘들겠다... 정도의 생각만 했다. 나중에 알아봐야지. 욕실을 구경하는 게 먼저였다.
 
문을 열면 평범한 욕실입니다
 
각종 세안도구가 정리되어있으며, 수전을 열어보면 온수도 냉수도 무리없이 잘 나옵니다
 
여기서... ... 씻을 수 있겠네요!
 
선태영:씻으면 좋지. 그나저나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용케 수도가 안 얼었다. 관리가 되고 있나? 이것도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물을 틀어서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예쁜 천장을 보려면 예쁘게 세수를 해야지.
 
바깥으로 나와 천장을 보면 은은한 오로라의 빛을 반사시켜 도료로 그어진 별자리가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중 유독 반짝이는 별자리 두 개를 발견합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별자리 두 개는... ... 아! 각각 '사자자리'와 '처녀자리'군요
 
생각해보면 두 가지 전부 8월의 별자리입니다
 
선태영:8월? 입술을 물어뜯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봤던 달력이 8월이었나? 아닌가? 기억이 가물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카펫이나 구경했다.
 
천장의 크기만큼이나 넓고 커보이는 남색의 카페트가 2층의 중앙에 깔려 있습니다
 
일견 평범한 카페트 같지만, 별의 궤도를 그려넣어 '예쁘다'라는 감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여기에 누우면 꼭 밤하늘에 누워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카페트 끝부분에 살짝 튀어나온 종이조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태영:카페트 밑에 종이가 깔렸네. 카페트를 발로 툭툭 밀어서 들추고 종이를 주웠다. 어쩌다 얘는 여기까지 기어들어갔을까...
 
봉투가 한 장 있네요!
 
반짝이는 염료를 사용하여 물들인 듯 푸른색의 진주처럼 빛나고 있는 편지 봉투입니다
 
편지는 금색의 씰링 왁스로 봉해있습니다
 
씰링 왁스에 찍힌 문양은 어떤 별자리 같습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저게 무슨 별자리더라... ...
 
기억이 안 나네요, 뭐 그보다 중요한 건 봉투니까요!
 
편지의 뒷먼에는 '... ...에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부러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하게 해놓은 걸까요?
 
게다가 필체 또한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선태영:누구 편지야.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뜯어본다! 이게 누구한테 보내는 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펫 밑에 깔려있었으니 볼 사람 없는 편지겠지.
 
'언제나 내 이기심으로 너를 슬프게 해서 미안해.'
 
그렇게 예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면서, 안은 간결하기 그지 없습니다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리저리 둘러보니, 뒷면에 메세지 하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네가 아는 내가 아니고, 내가 아는 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우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필체는 여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선태영:이건 또 무슨 소리람. 편지를 다시 봉투에 잘 집어넣고 있던 바닥에 다시 내려놨다. 카페트 위에 얹은 편지를 잘 토닥토닥... 해주고 망원경 쪽으로 갔다.
 
과학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가의 천체망원경입니다
 
밤이 오면 망원경을 이용해 바깥에 나가 별자리를 관측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망원경 아래 놓여진 책자가 하나 보입니다
 
선태영:호오... 비싼 거라 손 댈 엄두가 안 났다. 망원경 대신 책자에나 손을 댈 생각이었다. 눈이 오니까 밖에 나가서 볼 수도 없고. 그랬다 흠이라도 나면? 혼자 생각하다 입을 크게 벌렸다. 허억
 
더 이상 이 층에는 볼 게 없어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기도 하고... ...
 
내려가볼까요?
 
선태영:지금쯤이면 형이 깼을지도 몰랐다. 책자도 내려두고 아래층으로 호다닥 내려갔다. 춥다고 오들오들 떨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절대 그 동안 구경하느라 까먹은건 아니었다.
 
침실로 돌아가보면, 어느새 잠에서 반쯤은 깬듯한 형이 침대 끝에 걸터 앉아 있습니다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뒷통수가 아직 눌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인기척에 둔감한 사람인지라, 당신이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듯합니다
 
선태영:"형 일어났어?"
 
침대 위로 엎어지며 형에게 머리를 가져다 부볐다. 잠이 덜 깬 상태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눌린 머리를 손으로 헤집어줬다.
 
선 린:아직 잠이 덜 깬 눈을 깜빡였다. 우리 애기 어디 갔다 왔어어. 뒷말이 줄줄 늘어졌고, 목소리는 아직 잠겨 있었다. 손을 들어 허리 쯤에 갖다 박힌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나 너무 많이 잤나."
 
선태영:"나 2층 갔다 왔어. 빨리 둘러보기만 하구 왔으니까 형도 많이 잔 거 아닐걸."
 
내가 많이 잔 게 아니라는 가정 하에? 형의 허리에 팔을 감고 골골인지 그르렁인지 구분 하기 힘든 소리를 냈다. 잠도 안 깨놓고서 습관적으로 귀여워해주는 게 증말...
 
선 린:"2층 갔다 왔어?"
 
거기 예쁘지. 형도 어제 갔다 왔잖아. 뭐 마음에 드는 건 있었고?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쳐주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내내 이렇게 잠긴 상태로 있을 순 없으니까. 아까는 갑자기 옆에 없어서 놀랐었다. 찾으러 갈까, 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네가 보여 다행이었지.
 
선태영:"2층 천장도 막 예쁘구... 망원경도 있고 해서 재밌었어."
 
하늘이 이렇게 이렇게...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감상을 표현해보려고 애썼다. 별자리도 있었고 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다보니 힘이 들었다. 에휴, 숨을 쉬고 팔을 내렸다.
 
선 린:"아 맞다. 그렇지, 망원경... ... ."
 
2층에는 망원경이 있었지. 그게 아마 들고 다닐 수 있는 접이식이었으니까... ... . 곰곰히 생각하다 밝게 웃었다. 있잖아, 태영아. 활기차게 운을 띄웠다. 동그란 머리통을 계속 만지작댔다.
 
"우리 저녁에 망원경, 보러 나갔다 올까.
 
선태영:"안 춥겠어? 오늘 아침에도 형 엄청 하얘졌었는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눈을 마주했다. 형이 분명 추워보였는데 해가 지고 나가면 얼마나 춥겠어! 그래도 굳이 나가자는 걸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형이 괜찮다면 뭐... 괜찮은 거지. 빳빳하게 들었던 고개를 도로 내렸다.
 
선 린:"그건 옷이라도 든든하게 입으면 되는 일이지."
 
형이 그렇다고 막, 겨울에 못 돌아다니고 그랬어? 장난스럽게 웃었다. 일단, 꽤 늦게 일어난 것 같으니... ... 점심 겸 저녁을 조금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기 뭐라도 먹을래?"
 
선태영:그치만... 그치만.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고 침대에 고개를 박았다. 뭘 먹든 상관 없으니까 형이 알아서 해. 말이 눌리고 불퉁해서 어눌해졌다. 발을 신경질 적으로 팡팡 굴렀다.
 
선 린:"난로 혼자 떼웠어?"
 
방 따뜻하더라. 얘기하며 몸을 일으켰다. 발을 팡팡 굴리는 게 귀엽고, 또 뭐가 문제일까 싶어서. 푹 박힌 네 정수리에 뽀뽀했다. 한 번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뒤로 사르르 웃는 소리도 얹혔다.
 
"애기, 정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선태영:"없어!"
 
날카롭게 대꾸했다. 물론 3초 쯤 후에 당근만 빼줘... 기어들어가는 말이 붙긴 했다. 당근은 싫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뒤집었다. 형을 보다보니 계속 짜증을 낼 수 없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선 린:"왜 자꾸 화를 내. 태영이가 이러면 형아가 못 가잖아."
 
응? 달래듯 손을 내려 뺨을 감쌌다. 얼굴이 조금 따뜻한 것도 같았다. 아니, 내가 차가운 건가... ... 아니면 둘 다인가. 생각하다 그저 뺨을 꾸욱. 아프지 않게 누르는 손에 애정이 가득 찼다.
 
"화내지 마."
 
선태영:"화 안 냈어..."
 
손을 붙잡아서 뺨에 꾹 붙였다. 계속 누르고 있든 쓰다듬든 해달라는 뜻이었다. 다 컸는데 형한테 어리광 부리는 게 습관이 돼서 큰일났다 싶었다. 어리광을 부리면서도 한숨이 샜다.
 
선 린:"화 안 났으면 다행이고."
 
계속해서 네 볼을 쓸어주다, 크게 한 번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형 이제 갔다 올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종종 걸음으로 나가 냉장고를 확인해보면 할만한 건 대충 다 있었다. 간단하게 볶음밥 같은 거라도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며 이것 저것 꺼내봤다. 당근은 싫다고 했으니 당근은 빼고.
 
선태영:그렇게 크게 짜증을 낸 것도 아닌데 계속 신경쓰였다. 화낸 것도 아닌데 화내지 말라고 형이 달래줘서 그래. 무튼 다 형 때문인 듯, 남 탓을 해놓고 나면 속은 더 불편했다. 침대에 다시 얼굴을 파묻고 우는 소리를 냈다. 형한테 가서 비비적대기라도 하면 덜 불편할지도 몰랐다. 밖으로 기어나가 혀어엉... 하고 불렀다.
 
선 린:마침 불 위에 팬을 올려두고 이것 저것 볶기 시작할 때였다. 혀어엉, 하고 들리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왜요, 우리 애기~ 달래는 듯한 말투는 어찌해도 고쳐지지 않을 심산이었다. 볶음밥은 그래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어서 좋았다.
 
"방에 있어도 되는데."
 
선태영:불 앞에 있는 건 봤지만 쪼르르 달려가서 품 안에 푹 안겼다. 어차피 내가 먹을 건데 태우면 뭐 어때. 물론 탄 걸 먹이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야 하겠지만 그건 형 사정이었다.
 
"짜증내서 미안해... 그러려고 그런게 아니라아..."
 
선 린:동생의 이런 점이 사랑스러웠다. 자기가 괜한 말을 했단 걸 알고 금세 놀란 듯 사과해오는 모습 같은 게. 불 조심해야지, 타이르며 품 안에 널 꼭 안았다. 팬을 조금 더 뒤로 밀고, 불은 끄고. 칭얼대는 머리통을 바라보며 조금 웃었다.
 
"그런 게 아니고?"
 
선태영:"형이 웃으니까 괜히 심술 부렸어..."
 
미안해애... 크게 맘에 담아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원래 작은게 쌓여서 싸움이 되는거라고 그랬다. 고개를 살짝 들어서 눈을 마주쳤다. 또 웃네...
 
선 린:마주한 눈이 역시 맑았다. 웃으며 볶음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태영이가 좋으니까 웃지. 밥 금방 되는데, 식탁 가서 앉아 있을래? 말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어린 애들을 달래듯 손을 내려 엉덩이를 툭툭 치기도 했다. 갑자기 식었다 다시 음식을 시작하면 맛이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같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선태영:"옆에 있을래."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사과도 했으니 고집도 한 번 부려야 했다. 누가 정한 건 아니지만 그냥 그랬다. 좋은 냄새가 나길래 고개를 샇살 저었다.
 
선 린:"응, 그럼 옆에 있자."
 
찬찬한 손으로 불을 키고, 다시 하던 음식을 계속했다. 다시 말하지만 볶음밥은 재료만 있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었다. 바쁘게 손을 움직여 조금 더 빠르게 음식을 완성했다는 건 선태영만 모르는 비밀이겠지만. 음식하는 거 구경은 재미 없을텐데, 같은 걱정은 일단 옆에 애가 있어서 좋으니 넣어두기로 했다.
 
"이젠 밥이 다 됐으니 식탁에 갑시다, 선태영 어린이?"
 
선태영:"어린이 아니야."
 
거의 다 컸다구.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식탁으로 갔다. 열아홉이면 다 컸지. 내년이면 어른이었다. 내년이면 어른! 기분이 좋아져서 작게 흥얼거렸다. 맛있는 거 좋아.
 
선 린:"그럼 우리 태영이가 어린이 아니고 뭐야?"
 
얘기하며 팬에 있던 음식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 넣고는 식탁 위로 올려뒀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잘 봐야 한다며 이것 저것 부모님이 가르쳐줬던 음식이 큰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었다. 항상 음식은 해놓고 먹일 때마다 뿌듯했다. 사실 컴퓨터가 아니고 요식업 쪽으로 나가야 하나. 직업 만족도가 최상일 거 같은데. 손님은 태영만 두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앉았다.
 
선태영:"태영이 어린이 아니고 선린 동생."
 
밥이다 밥. 밥이 눈 앞에 놓였길래 대충 대답했다. 형이 해주는 건 웬만하면 다 맛있으니까 좋았다. 형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한 건 아닐거 아니야... 근데 왜 항상 맛있지? 생각해볼 만한 거리였다. 근데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나? 눈을 이리저리로 굴려가며 생각했다.
 
선 린:그런데 생각해보면 손님을 태영만 둘 심산인데, 딱히 그쪽 계열로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한테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선태영 먹일 때만 직업 만족도가 오를텐데. 그럼 태영은 토실토실 살이... ... 그건 귀여울 지도 몰랐다. 요즘은 너무 말랐으니까. 수저와 젓가락을 나란히 챙겨줬다. 맛있게 드세요.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근은 안 넣었어."
 
선태영:만세. 당근만 없으면 뭐든 좋았다. 입에 숟가락을 넣었다. 물론 밥을 떠서... 열심히 먹다보면 입 안이 꽉 차서 볼이 빵빵해지고 그랬다. 얌전히 먹으랬는데. 입 안에 있는 걸 급하게 꿀꺽꿀꺽 삼켰다.
 
선 린:음식을 집어 먹다 맞은 편에서 볼을 빵빵히 부풀리고 있는 널 바라봤다. 항상 먹을 때 저렇게 복스럽고 귀엽게 먹는단 말이지. 난 저렇게 안 되는데. 대충 따라해보려다 관뒀다. 그래도 너무 급하게 먹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랐다. 컵을 주욱, 네게 밀었다.
 
"너무 급하게 먹진 말고. 응?"
 
선태영:우웅. 입에 먹을 걸 잔뜩 넣어놓고 대답했다. 정말 믿음 안 가겠다. 따라준 물이라도 열심히 마셨다. 물을 마시다보니 밥도 금방 다 먹었다. 숟가락을 잘 내려놓고 웃었다.
 
"아... 잘 먹었습니다."
 
선 린:먹는 걸 구경하며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내 그릇(^^!)에 있던 음식도 곧 끝이 났다. 옆에 뒀던 물을 텅 빈 컵에 따라 마셨다. 우리 애기, 맛있었어요? 물어보며 그릇들을 잘 쌓아 싱크대에 뒀다. 설거지 할 거리가 몇 개 없어서 나름대로 괜찮은 기분이 됐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해줄게."
 
선태영:"맛있었어!"
 
당근도 없어지고... 형이 해준거고. 형이 정리하는 동안 다리를 살살 흔들며 맛있는 이유를 꼽았다. 꼽다보니 몇 개 나오지 않았다. 형이 맘에 안 들어할까?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는 건 확실히 봤을테니 상관없겠지. 식탁에 턱을 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선 린:"응. 여기서 더어."
 
데꾸하며 환하게 웃었다. 설거지를 하다 뒤를 돌면 식탁에 턱을 괴고 예쁘게 앉아 있는 네가 보였다. 이런 시간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물어가는 해 너머로 떨어지는 눈꽃을 보다가도 그런 생각을 했다. 괜히 감성적이 되면 안 되는데. 대충 설거지를 끝마치고 손을 닦았다.
 
그렇게 점심 겸 저녁을 먹고, 함께 쇼파에 앉아 따뜻하게 책을 읽으며 자잘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벌써 밤이 내려옵니다
 
저녁 아홉 시 쯤일까요?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지? 물으며 망원경을 가지러 올라가는 형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따뜻하게 껴입고 가자며 옷을 잔뜩 껴입고, 바깥으로 나가보면 눈은 여전히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 별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상하리만치 하늘이 맑습니다
 
오로라가 걷힌 남색의 밤하늘에 한가득 수놓아진 별과 은하수에, 작은 감동이 밀려나오는 것도 같습니다
 
가슴께가 간질거리고, 뺨에 스치우는 차가운 눈송이의 온도가 나쁘지 않습니다
 
선 린:"이리와, 태영아."
 
적당한 곳에 망원경을 두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네 손을 이끌었다. 망원경 앞에 널 세워주곤, 소리내 웃었다. 눈 오는 바깥도 별 거 아니네. 예쁘다. 코가 조금 빨갛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애기,
 
"빨리 망원경에 눈 대봐. 형이 설명해줄게."
 
선태영:춥다. 근데 예쁘기도 했다. 오로라도 뜨고 눈도 내리고. 찬 바람도 사실 좋아하는 편이라 코 끝이 얼어붙은 느낌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꼬리가 있었으면 열심히 흔들고 싶었다. 하늘을 정신없이 보다 형이 이끄는대로 망원경에 눈을 댔다.
 
"형은 하늘도 볼 줄 알어?"
 
선 린:"형이 못하는 게 어딨겠어."
 
손을 들어 네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안심하라는 의미였다. 항상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더 귀여웠다. 음음. 네가 보고 있는 걸 흘깃, 살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은하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계절이야. 은하수 부근에 있는 게 거문고자리고, 거기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직녀성.
 
"그리고 그 건너편에 있는 게 견우성."

우리 애가 견우와 직녀 알지?

 
선태영:
행운
기준치: 40/20/8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은하수의 가장 밝은 곳에서 궁수자리의 '남두육성'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전갈자리입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전갈자리라고요?
 
생각해보면... ... 오늘 아침에 봤던 책자의 계절 별자리가 떠오릅니다
 
거문고자리와 전갈자리는 분명... ... 여름에 관측 가능한 별자리였을텐데요
 
망원경에 퍼지기 시작하는 밤 속 설산의 정경과 여름철 별자리가 사뭇 조화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분명 지금은 겨울일텐데요, 이상하지 않나요?
 
또 한 번의 위화감,
 
765 (GM):산치 체크.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던 순간 시선이 느껴집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당신의 형의, 애정이 가득 담긴 익숙한 시선
 
그 일방적인 눈길에 고개를 돌리면, 당신의 형은 모른 척 시선을 망원경 쪽으로 돌립니다
 
문득 당신은 어제부터, 그와 제대로 눈을 마주한 적 없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뭔가 수상하지 않나요?
 
선태영:"근데 형 왜 태영 안 봐?"
 
얼굴말고 눈. 눈 밑을 톡톡 건드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안 보는데? 원래라면 이쪽에서 눈을 피하고 도망치고 수줍어했어야 맞는 말이긴 했다. 왜 그러는 거야. 얼굴을 잡아다 눈을 맞춰보려고 했다.
 
선 린:"어, 어?"
 
향이 언제, 그랬지이. 말을 늘리며 눈을 굴렸다. 바르게 마주 닿는 곧은 눈동자. 세상을 항상 올곧게 인식하는 따뜻한. 눈을 마주보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너는 항상 이랬었는데. 예쁘다, 태영아. 실로 그랬다. 흰 눈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네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선태영:
심리학
기준치: 85/42/17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선이 옅게 흔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묻어나는 것은 분명 선명한 애정이었지만... ... 그와 동시에 묻어나는 것은 초조함, 내지는 불안함
 
그리고... ... 당신은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눈동자 한 구석에 묻어나 있는 죄책감, 같은 것을요
 
선태영:"뭔데?"
 
사람 찝찝하게 진짜. 형의 팔을 붙잡고 살살 흔들었다. 뭐가 그렇게 켕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도 못 볼 정도면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술 먹고 덮쳤을 때도 눈을 못 보진 않았잖아. 팔을 흔들었다가 잡아당겼다가 암튼 난리를 쳤다. 형은 보통 떼를 쓰면 받아주니까.
 
선 린:"태영아, 형 추워."
 
바람이 너무 차다. 일단 들어갈래? 물으며 눈썹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선태영은 선린 얼굴에 약하니까 얼굴을 조금 들이밀어보기도 했다. 거짓말은 아니라는 듯 얼음장 같이 차가운 손을 네 손에 끼워넣고, 조금 이끌어도 봤다.
 
그의 없는 답변에서 당신이 깨달은 것은, 하나 쯤입니다
 
평야처럼 펼쳐진 드넓고 아름다운 설산,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이상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는 얼굴이 자잘하게 기침을 뱉는 것도 같습니다
 
역시, 춥긴... ... 추운가요?
 
선태영:"...나 안 넘어가줄거야."
 
들어가긴 하겠지만 넘어가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형 아프지 말라는 뜻이라고, 열심히 못을 박았다. 형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저렇게 얼굴이나 써먹으려고 하고 아주 죄질이 나빴다.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댔다.
 
선 린:"... ...안 넘어가 줄 거야?"
 
형 진짜 아픈 거 같기도 하고... ... 말을 죽, 늘어트리며 네 손에 이끌려갔다. 괜히 네 옷을 살살 벗겨 침대로 이끌었다. 집으로 들어가자 말자 따끈한 게 기분이 좋았다. 응? 그럼 형이랑도 안 자줘? 귓가에 대고 중얼중얼, 묻는 목소리가 한껏 풀에 죽어 있었다.
 
선태영:"왜 안 보는지 말해줄 때까지 안 안고 잘거야."
 
침대에 끌려가는 건 끌려가는 거지만. 단호하게 몸을 돌려 눕고 팔짱을 꼈다. 이래봤자 형이 불쌍한 척에 아픈 척에 이것저것 하면 넘어가주게 되겠지만 그 전까진 좀 어깃장을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선 린:"형이 어떻게 태영이를 안 보고 살아. 응?"
 
진짜아, 계속해서 말꼬리를 늘리며 어기적 네 등에 바싹 달라붙었다. 따뜻한 등에 얼굴을 부비고, 훌쩍이는 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래도 안 안아줘? 형아 이제 별로야? 잔뜩 서러운 말투로 물으면, 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눈썹을 잔뜩 끌어내리기도 했다.
 
선태영: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몸을 돌려서 형의 머리를 잘 끌어안았다. 넘어가주면서도 저렇게 불쌍한 척 울상을 하고 있는 게 얄미워서 볼을 잡아당겼다. 진짜 찝찝한데 여기서 더 추궁하면 보란 듯이 울지도 몰랐다. 그러면 안되니까...
 
선 린:네가 머리를 끌어안아줌에 따라 더욱 푹, 안겼다. 큰 몸을 동그랗게 말고 머리만 안긴 꼴이 돼버리긴 했지만. 괜히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슥, 들어 네 입술에 족. 하고 뽀뽀도 해줬다. 형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말이야, 태영이를.
 
"우리 태영이, 잘자. 안녕, 내일 만나자."
 
분명 전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어쩐지 형이 건네는 잠의 인사를 들으면 자꾸 눈이 감기기만 합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과 함께, 당신은 맞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정신을 잃듯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 ...
 
...
 
당신은 익숙한 추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선 린:
(To GM)rolling 1d100<75
 
(
5
 
)
 
 
=
1 Success
 
어쩐지 옆에 있는 형의 몸 상태가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안색이 조금 더 창백해보이는 걸까요?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
 
선태영:자고 일어났더니 옆에 있던 형 상태가 말도 아니었다. 놀라서 형을 흔들어 깨워봤다. 뭔가 큰 거짓말을 했을 수는 있어도 일단 지금 형이 없으면 여기서 혼자 너무 힘들테니까. 사실 핑계고 그냥 놀랐다.
 
선 린:낑낑, 꿈에서 강아지가 우는 소리에 훌쩍 눈을 떴다. 분명 꿈에선 조그만 강아지가 울고 있었는데... ... 같은 생각을 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꿈에서 본 강아지보다 더 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네가 보였다. 손을 뻗어 얼굴을 감쌌다. 우리 애기,
 
"또 왜 그런 얼굴이야."
 
선태영:"형 아파?"
 
저도 모르게 울상이 돼있었다. 식은땀도 나고 차가워. 눈코입만 내놓게 형을 이불로 감싸뒀다.
 
선 린:"형 진짜, 괜찮아."
 
아니 진짜. 그냥 조금만 아픈 거야. 어제 추웠잖아. 구구절절 얘기해도 불신의 눈빛이 돌아왔다. 예쁘게 봐주지는 못할 망정. 약간 서러워졌다. 걱정하는 얼굴에 대고 잠시 고민을 거듭했다.
 
"그럼... ... 난로만 조금 더 떼우고 와줄래?"
 
선태영:"알았어!"
 
이불 잘 덮고 있어야해. 나오지 말고. 다시 한 번 이불을 잘 덮어주고 불을 피우러 뛰어나왔다. 그래도 어제 한 번 해봤다고 능숙하게 불을 피우고 다시 침대에 올라갔다.
 
"많이 추워?"
 
침대를 짚고 앉은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건 아픈 형과, 쌓이고 쌓인 방대한 양의 눈입니다
 
대체 밤사이 얼마나 많은 양의 눈이 쏟아져 내린 걸까요?
 
이대로라면 정말... ... 아예 눈 속에 파묻혀버릴 지도 모릅니다
 
선 린:"아니, 괜찮아."
 
괜히 웃는 얼굴을 만들며 숨을 내뱉었다. 이젠 시키는 것도 잘 하고, 우리 애기 다 컸네. 중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창문 사이로 떨어지는 눈이 매서웠다. 이제 어떻게 하지.
 
"무서워?"
 
선태영:"저런게 무섭지는 않은데..."
 
눈을 깜빡이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눈이 아무리 많이 와봤자 눈이고... 걱정되는 건 형이 아픈 것 정도? 하지만 그것도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형은 맨날 자니까 아픈 것도 빨리 낫겠지.
 
선 린:"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손을 뻗어 네 팔을 당기고, 품에 안은 뒤 연신 등을 쓰다듬었다. 누굴 안심시키는 건지 모를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창밖의 눈이 이대로 가득 쌓이면, 까지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태영아, 우리 잘까?"
 
선태영:"자자."
 
형은 맨날 잠만 잤다. 그래도 지금은 아프다는 이유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걱정 가득한 눈으로 형을 계속 쳐다봤다.
 
"졸려?"
 
765 (GM):아귀여워 사랑해
 
선 린:"미안해."
 
안녕, 목요일... ... . 얘기하려던 말을 멈췄다. 미안하단 말의 출처도, 의미도 불명확했다. 원래 이런 명확하지 않은 것들은 좋아하지 않는 편에 속했는데. 걱정 안 해도 돼, 형 진짜 금방 나아. 하나도 안 아파. 종알 거리는 말들이 전부 너를 향해 있었다. 태영아.
 
"안녕, 내일 다시 만나자."
 
볼품없는 목소리임에도 단단해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역시 인사를 내뱉는 사람이 당신의 형인 탓일까요?
 
아직 한낮인데도, 밤새 푹 잠들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 하나에 당신은 잠에 빠져듭니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 자잘한 기침 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 ...
 
...
 
조금은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바깥은 매서운 칼바람과 휘몰아치는 누보라의 소리가 선명합니다
 
잠에 취한듯 몽롱한 정신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네요
 
다만 당신의 머리칼을 조용히 쓰다듬어주는 익숙하고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 아침이 올 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더 자자."
 
여전히 나지막하게 잠겨있는 목소리가 적막하게 울려퍼집니다
 
선태영: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안녕, 내일 다시 만나자." 하는 익숙한 밤의 인사가 들립니다
 
어쩐지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것 같음에도 당신은 뿌리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마법처럼요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푹 잠들었던 탓일까요? 온 몸이 개운합니다
 
손끝에는 부드러운 극세사 카펫의 질감이 느껴집니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답게 떨어져내리는 예의 그 녹빛 오로라,
 
천장 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이기 시작해 넘실대는 오로라와 하늘이 천천히 가리워지며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눈 한 줌에 하늘이 한 줌씩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천장에 띠 모양으로 둘러져있는 군청색의 황도 12궁은 푸르게 빛나고 있네요
 
이곳은 아무래도 목재 주택의 2층인 것 같습니다
 
선 린:"잘 잤어?"
 
눈을 뜬 얼굴을 내려다보며 꼭 안은 팔에 힘을 줬다. 무릎에 누워 세상 모르고 자던 단정한 얼굴이 예뻤다. 눈이 쌓이면 쌓일 수록 오로라는 퍼즐의 한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됐다. 한두 줄기 남아 반사되던 빛들도, 차츰, 옅어지고... ...
 
선태영:눈 앞이 아직도 가물했다. 느리게 손에 머리를 부볐다. 어떻게 어떤 이유로 2층에 올라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형이 안아주고 있으니 됐다 싶었다.
 
"형 일찍 일어났나보다아..."
 
이제 완전히 옅어진 빛들을 보자면, 곧 어둠에 잠식될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당신을 바라보던 얼굴이 천장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꼭, 버진로드 같네."
 
흩어지는 목소리가 빛과 함께 옅어집니다
 
버진로드? 그러게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입니다
 
당신은 일순 결혼식장에 길게 깔리는 아름다운 실크 융단을 떠올립니다
 
그 첫걸음의 카펫을 버진로드라고 부르던 것을 기억합니다
 
천장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마주친 눈이 따뜻한 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평소보다 차분한 표정, 얇게 호를 그리는 입술... ...
 
눈이 마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은 결국 완전히 눈에 의해 가려지고 맙니다
 
서로의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는 완전한 어둠 속은 조금, 무서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답함이나 복잡함,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새까만 어둠 속에서 푸른색의 황도 12궁만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 칠흑을 가르는 것은 서로의 조용한 호흡소리, 부차적으로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것은 떨려오는 한 마디
 
선 린:"태영아."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기, 얇은 머리카락. 그런 것을 애정어린 손길로 쓰다듬었다.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건 어떤 의미인지. 네가 영영 알지 못하길 바랐다. 네 볼쯤을 쓰다듬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눈길이 잔잔한 황도 12궁으로 향했다. 잔잔하게 비치는 띠로 인해 시야가 조금은 트이고 있었다.
 
"같이 죽을까?"
 
그의 잔잔한 눈, 시선이 트인 눈 사이로 파고듭니다
 
그릇:속쌍해....
,_ ,
 
선태영:"무슨 소리야?"
 
왜 죽어? 우리 왜 죽는데? 형의 팔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서운 농담 말라며 넘어갈 수도 있을 말이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꼭꼭 씹어넘겨야만 하는 버릇이 들어버렸을 뿐이었다. 얼굴 가득 근심을 담아 고개를 바짝 들었다.
 
"그거 장난이지..."
 
선 린:"속여서 미안해. 태영아,"
 
지금은 여름이야. 눈으로 파묻힌 저택과, 푸르게 빛나는 황도 12궁. 그리고 그 안의 죄인. 속죄를 뱉기엔 아주 딱인 구조였다. 그뿐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놀란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살갑게 웃는 얼굴이 네 얼굴을 잡았다.
 
"이곳은 멸망해가는 세계고, 이 집까지 눈으로 파묻혀 있어."

우리는 수요일이 되면 죽을 거야.

 
선태영:고개를 틀었다. 형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긴 했다. 딱히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서 해줄 말도 없었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웃는 얼굴에다 대고 욕을 할만한 성격도 되질 못했다.
 
"그러니까... 어... 그 전에 죽자는 소리야?"
 
선 린:네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을 평온하게 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는데. 조금은 웃긴 모습이 된 것 같긴 했다. 네 일에는 항상 유난스럽고 붕 떠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잠시 말을 고르듯 입을 달싹였다.
 
"내 이기심, 으로... ... 힘들게 해서 미안해."
 
선태영:"형 때문이야?"
 
우리가 죽는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형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데. 천천히 움직이는 입술에 손을 올렸다. 의도한 것이라기보단 당황이었다.
 
선 린:"형이 이런 사람이어도, 태영이는 괜찮아?"
 
다른 설명을 붙이진 않았다. 아직은 할 때도 아니었고, 이것마저 그저 내 변덕일 뿐이었으니까. 입술 위로 얹어진 손이 내가 알던 그대로의 손이었다. 짧은 웃음과 함께 황도 12궁의 빛이 점점 잦아들었다.
 
선태영:"형이 어떤 사람인데?"
 
제대로 답해주는 건 없으면서 쭈그러들기만 하는 건 별로였다. 손 아래에서 입술이 움직였다. 괜히 기분만 이상해져서 손을 그냥 내렸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은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숨을 깊게 쉬었다.
 
다시 한 번 찾아오는 온전한 어둠 속에서, 이마에 차갑게 식은 입술이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안녕, 목요일에 다시 만나자." 하고... ...
 
또 한 차례, 밤의 인사가 건네집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익숙한 졸음이 몰려옵니다
 
... ...
 
...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얼마나, 어느 정도나 흐르는 지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립니다
 
눈 속에 잠겨들어 이내 먹먹히 침몰되고 마는 소리는 찰나였나요?
 
입술을 벌려보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눈꺼풀을 들어올려보지만 시야에 차는 것은 삭막한 어둠 뿐입니다
 
냉기에 온 몸이 얼어붙듯 끔찍한 맹추위가 지속되다가도, 피부를 녹여낼 듯 살인적인 더위가 정신을 덮칩니다
 
그런 이변 속에서도 이상하게 고통스럽다거나 아프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이건 분명 손끝을 쥐는 다정하고도 차가운, 모순적인 체온 탓이겠지요
 
어쩐지 익숙한 감각입니다
 
... ...
 
...
 
당신은 꿈을 꿉니다
 
관 속에 누워있는 누군가의 손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눈물을 토해내는 사람의 뒷모습은, 역시나 익숙하고도 소중한 그 뒷모습입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도 그럴게... ... 저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인 걸요
 
가까스로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선 당신은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에 숨을 멈춥니다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은, 분명 스스로의 육체가 아니던가요?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낯선 장면입니다
 
이는 당신의 기억이 맞나요?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그런 확신이 듭니다
 
아찔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 순간 장면이 전환되어있습니다
 
행복하고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행복해보입니다
 
아니, 행복합니다
 
이것은 오롯이 당신만이 느낄 수 있던 감정입니다
 
그 두 사람은 분명, 당신과 형의 모습이 맞으니까요
 
다시 한 번 화면이 반전됩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병상에 누워있는 당신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장면입니다
 
이는 당신의 기억이, 맞습니다
 
그런 확신이 듭니다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선태영: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당신은 아주 익숙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뜹니다
 
어쩐지 밤은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과 함께 손을 뻗으면, 팔이 채 다 펴지기도 전에 두꺼운 벽 같은 천장에 가로막힙니다
 
손끝에 감기는 것은 나뭇결이네요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같습니다
 
고개만 간신히 움직여 주변을 둘러볼 경우, 칙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떤 좁은 방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흘러갈 즈음, 문득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당신이 누워있는 공간이 '관 속'임을 깨닫습니다
 
선태영:이게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하게 천장을 긁었다. 이것도 형이 말한 미안하다에 들어가는 일인 것일지도 몰랐다. 천장을 힘주어 밀었다.
 
철퍽, 덜컹
 
둔탁한 소리와 함께 쏙아지는 장대비가 온 몸을 적시기 시작합니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어둠을 어둠으로 덧칠한 듯 회색으로 물들여진 하늘
 
먹구름이 잔득 끼어있고, 정처없이 빗물이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춥다거나 서늘하다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플만큼 억세게 쏟아지는 비를 맨몸으로 맞고 있는데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춥지도 않습니다
 
하다못해 축축하고 불쾌하다는 감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온 몸의 감각이 물에 젖어 녹아버린 것만 같은 스스로의 낯선 상태에 무언가 어긋났다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2/31/1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방금까지 스스로가 누워있던 '공간'을 내려다봅니다
 
관, 입니다
 
죽은 사람이나 누워있을 법한 관 속에서 깨어났음에도 크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진 않습니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으니까요
 
선태영: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자신이 깨어난 관이 꿈 속에서 보았던 관의 형태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 자신'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아닌 '내'가 누워있던 그 관
 
관 주변에는 비를 머금어 시들어가고 있는 새하얀 국화와 백합 무더기가 깔려있고, 그 옆으로 정처없이 비를 맞으며 누워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선태영:유체이탈이라고 하나...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관 속에 들어있는 나... 라고 해야하는지 무튼 그 얼굴을 가만히 봤다. 거기에 손을 대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야, 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말을 뱉은 그 순간, 당신은 깨질 것만 같은 격한 두통을 느끼게 됩니다
 
아니, 두통이라기보단 정신 그 자체가 천갈래 만갈래로 찢겨 나눠지는 듯한 환각에 가깝습니다
 
맞은 편에 보이는 익숙한 목재 주택, 빗물에 잠겨들어가는 세계
 
잠에서 깨어난 그가 놀란 눈으로 다급히 당신의 팔을 잡아당겨 끌어안는 감각과 함께 눈 앞이 암전됩니다
 
당신을 끌어안은 그의 온기조차... ... 느껴지지 않네요
 
정신을 완전히 잃기 직전 무의식 적으로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 단어의 나열이 있었습니다
 
아, 목요일이구나
 
... ...
 
...
 
어쩐지 적막한 슬픔 속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당신은 늦은 새벽, 텅 빈 영화관에 앉아 있습니다
 
좌석은 한 가운데로, 당신이 눈을 뜨는 동시에 정면의 대형 스크린이 영상을 띄웁니다
 
그렇게 조금은 긴 시간동안 한 편의 영화가 이어집니다
 
어쩐지 적막한 슬픔 속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제목은, 'Last thurdayism-라스트 써스데이즘'
 
수요일마다 세계가 멸망하고 목요일마다 재창조된다는 음모론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로, 하나의 안드로이드와 지구에 마지막 남은 하나의 인간이 그 속에서 죽음과 삶을 반복하여 살아간다는 내용입니다
 
오직 서로에게 의지하면서요
 
영화 속 세상은 끊임없이 절멸과 재창조를 반복합니다
 

세계는 때로 느닷없는 빙하기에 접어들며 꽝꽝 얼어 망하거나, 운석이 낙하하여 불타 사라지거나,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잠겨 멸망하거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지 인간형의 안드로이드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정신이 피페해져 갑니다
 
이를 보다 못한 인간은 세계 절멸 직전 안드로이드의 기억 센서와 감각 센서를 off 시킬 수 있는 수단을 고안해냅니다
 
방식은 밤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센서의 off로 인해 안드로이드는 더 이상 절멸해가는 땅에서의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이 세계가 수요일마다 멸망하고 목요일마다 탄생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재앙의 땅에서 고통받고 기억하는 것은 모두 한 명의 인간, 홀로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안드로이드의 기억과 감각 센서를 담당하는 부품이 오류를 일으키고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 둘 다시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알 수 있었습니다
 
눈치챌 수 있습니다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화가 아닌 '누군가의 기억' 그 자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기억은... ... 바로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떠오릅니다
 
폭설에 파묻혀 죽어가던 저번 주의 일들이
 

전염병이 창궐해 죽어가던 저저번 주의 일들이

 
싱크 홀로 무너져 죽어가던 3주 전의 일들이... ...
 
765 (GM):몇 가지 기억을 떠올린 당신은 믿을 수 없는 꿈 속 내용에!
산쮜짹그!
 
그릇:산쮜~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기억 속에서 또 한 번 정신이 수몰됩니다
 
스크린에서는 나지막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네요
 
"안녕, 목요일에 다시 만나자."
 
... ...하고, 밤의 인사를
 
... ...
 
...
 
군데군데 찢겨져나간 기억들과 침수될 것만 같은 빗소리에 정신이 맡붙습니다
 
당신은 침대 위에 누워있습니다
 
그 옆에서 당신의 손을 쥐고 있는 형의 얼굴에는 역광이 져있네요
 
하여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깨어난 것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입술을 엽니다
 
안녕, 하고
 
선태영: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어쩐지, 그의 인사를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차오릅니다
 
선태영:형에게 손을 뻗었다. 그때처럼 입술에 손을 얹었다. 입술은 말랑했다. 입을 막고 고개를 살살 저었다.
 
"왜 인사하는데?"
 
선 린:왜 그러는 거야?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따위의 말들이 웅얼대듯 흩어졌다. 크게 뜬 눈이 네 곳곳을 살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바싹 마르는 숨과, 어쩔 줄 모르는 손 같은 게 자꾸만 자리를 옮겨댔다. 네 손 위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혹시... ... 뭔가 기억 난 거야?"
 
선태영:기억난 것은 많았는데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꿈 꾼 내용을 물어보기라도 하려고 했는데
형의 반응을 보니 굳이 필요없을 것 같기도 했다. 손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뭐 말해야되는지 모르겠어..."
 
당신은 몇 가지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므로 물어여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입술 사이로 언제 또 이 기억을 잃게 될지 모르는 초조함이 섞여듭니다
 
선 린:네 반응과 함께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저정도 반응이면 기억해낸 것들과, 센서의 고장 같은 것들이 전부 설명됐다. 옛날부터 나는 네 얼굴 하나면 모든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숨을 내뱉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네가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
 
선태영:얼굴을 가린 손을 잡아내렸다. 조심스럽게 뺨에 손을 올리고 눈을 마주했다. 슬픈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어떤 기분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형은 형이니까... 머뭇대다 운을 띄웠다,
 
"나 죽었어?"
 
선 린:네가 묻는 말에 무언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은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조금 축축해진 것 같은 눈으로 탄성 같은 걸 삼켰다. 아, 같은 탄성을 뱉는 순간 긍정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살던 세계의 선태영이 죽었어."
 
그게 넌 아니지.
 
선태영:"그럼 형은 우리 형이 아니야?"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내가 안 죽었다니 다행인가 싶지만... 그래도 형과 함께 하던 선태영은 죽었고... 그럼 나랑 있던 형은? 머리가 너무 ㅃ빠르게 돌아서 아파졌다. 인상을 쓰고 형을 봤다.
 
선 린:"그러니까, 태영아... ... 너랑 나는, 따지자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인 거야."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말투였다. 조곤조곤한 그대로의 말투로 중얼댔다. 죄책감이라든가... ... 괴로움 같은 게 섞인 말투였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멸망하고 재창조 되는 우주로 이뤄진 또 다른 평행 세계... ... 같은 거지. 다행스럽게도 설명하는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다.
 
"내가 살던 세계의 선태영이 죽었고, 나는 다시 너를, 살리기 위해... ... 다른 세계의 또 다른 선태영을 잠시 빌려온 거야."
 
선태영:"나 빌리면 누가 살려준대?"
 
의도치 않게 따지는 말투가 되어버렸다. 급하게 입을 막고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댔다. 안 그래도 주눅들어있는 형이 놀라버리면 안되니까. 그래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다른 세계는 지금 어떻게 된거지? 머리를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 린: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내뱉으며 저런 말투로 얘기하는 네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역시 화가 나겠지, 이런 건. 살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베푼 이기가 차갑게 돌아왔다.
 
"계약을 했어. 멸망을 반복하는 이 우주에서 선태영의 모습을 본뜬 안드로이드와 함께 100주를 살아남는 종류의 계약이야."
 
그리고 그 안드로이드에 들어온 영혼은 다른 평행 세계의 선태영.
 
선태영:괜히 형을 빤히 쳐다봤다. 평소에 형이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형이 동생을 아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야해?"
 
선 린:"태영아, 형은... ..."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네 성격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와닿으니 잠깐 두려워졌다.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었던 말은 네가 없으면 안 돼, 같은 것일테니.
 
"원래 세계에 살고 있던 너는 잠시 혼수 상태에 빠져있어. 그래서... ..."
그걸 생각할 수록 너무 무섭고, 미안하고, 후회가 돼서... ...
 
선태영:그래도 형이니까...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형한테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고...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샜다. 내가 먼저 죽으면 저 꼴이 나니까 죽지는 말아야겠다, 같은 결심을 했다. 의도치않게 표정이 결연해졌다. 그 표정 그대로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거짓말은 나빠."
 
선 린:"그래서... ... 밤의 인사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제대로 된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계약이라고 네 몸상태가 쭉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뱉는 말이 한층 더 후련해졌다. 지금까지 쌓아두던 게 전부 사라진 기분이었다. 더 이상은, 괴로움이 없도록.
 
"미안해, 내 이기심으로 널 이용한 게 돼버렸네."
 
선태영: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사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같아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말들 뿐입니다
 
765 (GM):1d6+1... ...
한 번만 해주십쇼
 
선태영:
rolling 1d6+1
 
(
2
 
)
+1
 
 
=
3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하지? 막막했다. 평소같으면 형한테 비비기라도 했을텐데 지금 보고 있는 형은 괜히 낯설어서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거리를 둬버리면 저 형이 또 무슨 생각을 할 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옷자락을 잡아뜯었다.
 
선 린:"내가 사는 세계의 선태영을 살리겠다고 결국 다른 세계의 선태영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린거야."
 
옷자락을 잡고 있는 네 손 위로 손을 겹쳤다. 따뜻한 온기가 손과 손 사이로 전해져왔다. 이제는 마지막일 지도 모를 온기였다. 아랫입술을 물었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태영아, 그러니까... ...
 
"원한다면... ... 원래 살던 네 세계로 돌아가도 좋아. 네가 살던 세계의 나와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
 
선태영:"100주까지 얼마나 남았는데?"
 
100주면 어림잡아 25달, 거의 2년 정도를 혼자 저러고 있으려고 하니까 사람이 저렇게 되지. 분명 처음 이렇게 됐을때는 저 정도로 구질구질하지도 않았을 거였다. 형이 땅굴 파고 들어가는 걸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나 가면 형은 어떡해?"
 
선 린:"태영이가 가면... ..."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네가 가면. 급하게 선을 그어 동정심을 버리게 만들기 위한 유도였다. 네가 가면... ... 계약은 파기된 거니까. 그냥, 이번 멸망과 함께... ... . 네가 걱정을 할 것 같아서 다음 말을 뱉지 못했다.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물론, 100주를 다 채우고 돌아가는 것도 괜찮아.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많이 힘들겠지만... ... 네 선택에 맡길게."
 
선태영:
심리학
기준치: 85/42/17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형의 목소리 끝이 조금은 떨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반사적으로 눈치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당신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막연한, 간절함 같은 거겠죠
 
선태영:"형을 두고 가서 보내는 일상이 무슨 소용이야..."
 
물론 거기엔 형이 있겠지만. 형이 다른 세계의 선태영이라고 차별을 둔 점이 없듯이 나도 당연히 그래야지. 대충 옷을 잡아당기고 작게 웃었다.
 
선 린:"그래도... ... 네가, 네 일상도 있는데, 고작 형 때문에... ..."
 
중얼중얼,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마구 튀었다. 이렇게 100주를 같이 보내겠다고 얘기할 줄은 몰랐는데. 내 걱정은 하지 말라며, 널 이용한 죗값이라면 달게 받겠다고, 그런 말을 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잠시간 훌쩍댔다.
 
"정말? 그래도 괜찮아? 근데... ... 그러면, 너는 무슨... ... 죄야, 태영아."
 
선태영:"죄는 무슨 죄야. 형이 멍청한 죄지."
 
톡 쏘아붙이고 형을 들여다봤다. 울어? 울지 말구. 머리를 차근차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일상 걱정하기엔 좀 늦지 않았나...? 그 말까지 하면 슬프게 울어버릴까봐 입을 다물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사뭇 복잡해보입니다
 
그는 당신의 AI센서가 모두 고장났기에 100주가 될 때까지 죽고 살아나는 기억을 반복해야만 할 거라고, 그 모든 것들을 버텨낼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내 이기심으로 너를 이용했는데도? 내가 사는 세계의 너를 살리기 위해 너를 여기까지 끌어들였는데도?
 
따지듯 쉴새없이 물음을 날리면서도 그는 당신을 강하게 끌어안습니다
 
그리움과 외로움, 슬픔과 허탈함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혼돈 속에서 띄엄띄엄 간신히 말을 틔워내면서요
 
사실은 놓치기 싫었던 거겠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던 거겠죠
 
예기치 못한 순간 찰나에 당신을 떠나보냈던 억겁의 고통을 누르고 누르면서요
 
당신은 기꺼이 그리 하겠다고 말합니다
 
남아있는 시간만큼 당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겠다는 대답을 덧붙입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멸망이 반복되었습니다
 
수십 번을 죽고, 또 수십 번을 살아나는 숨막히게 끔찍한 악몽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되풀이하면서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
 
...
 
어느 순간, 기계음과 함께 정신을 차립니다
 
따뜻하다
 
희미한 정신 속에 떠오른 막연하고도 생경한 감각
 
당신은 문득 손끝에 느껴지는 따뜻하고도 익숙한 체온에 눈을 뜹니다
 
답답함에 입가를 매만지면... ... 뒤집어쓰고 있던 산소 호흡기가 손끝에 걸리네요
 
반대쪽 손은 여전히 따뜻해서, 당신은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당신이 사랑하는, 그가 앉아 있습니다
 
피부는 거칠어져있지만, 피로함에 터지고 쓸린 입술을 하고 있지만, 분명 지친 안색이지만, 확실히... ...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모습입니다
 
복도 건너편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오는 듯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의 형이 손을 꾹, 쥐어주는 익숙하고도 그리운... ...
 
그러나 많이 슬펐던 체온, 보내온 시간들, 함께 맞이했던 100번의 잊지 못할 순간들
 
100번의 멸망을 맞이한 뒤 당신은 당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에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팔랑, 어디선가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이 무릎 위로 떨어집니다
 
아, 어쩐지 피곤하네요
 
당신은 당신의 손을 쥐고 있는 그에게 작게 속삭였습니다
 
잘 자, 형. 내일 다시 만나자.
 
END1. [잘 자, 내일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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