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의 부름 7판 팬 메이드 시나리오 리플레이 로그

 

 

🤖 모든 모조품들에겐 낙원이 있다 💀

 

 

시프터: 선유하

2022.03.02~ 03.28

구애명 :바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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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2
 
Unsung Duet
 
모든 모조품들에겐 낙원이 있다
 
시프터 선유하
 
바인더 구애명
 
우당탕탕 명유하의 이계탈출기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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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새하얀 연구실은 언제 보아도 삭막하기만 합니다.
 
신체 유지보수를 위해 주기적으로, 혹은 이계에 다녀올 때마다 검사를 받았던 당신에겐 다소 의무적이고 차가운 공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일까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있자면, 당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상태를 기록하던 연구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지금은 한 명 뿐이지만요.
 
옆에서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던 연구원이 말을 걸어옵니다.
 
연구원: 준비는 되셨나요, 구애명 씨?
 
준비가 되지 않을 이유는 없죠.
 
그야, 당신은 폐기처분을 받은 레플리카잖아요.
 
이에 반항했든, 하지 않고 순응했든, 당신에겐 이미 한 차례 체념한 만큼의 시간이 흐른 이후입니다.
 
스스로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변이와 회복을 너무 겪어버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뿐더러
 
이젠 이 몸이 자신의 몸인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으로,
 
연구원: 주사를 놓으면 당신은 바로 잠에 들거에요. 그리고 유물의 힘으로 이계에 넘어가게 될 겁니다. 이계로 넘어가면서 생체 반응은 사라질 거라, 그렇게 무섭지는 않을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당신의 죽음에 대해 다소 평이한 어조로 말하던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저 주사를 놓으면 곧, 폐기처분 되겠죠.
 
여전히 툭하면 이계에 끌려가고 있을 그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될련지...
 
조금쯤 걱정이 들수도 있겠습니다.
 
구애명:(삶을 살면서 몇 번의 체념을 거쳤던가. 개 중 가장 마지막의 체념은 또 무엇이던가. 구애명은 잠깐 연구원의 말에 작게 웃음 지으며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변이와 회복을 겪었던 몸이, 무겁게 느껴졌을까.) 이계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남겨두고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아직도 존재하는구나. 부디 별 탈이 없게 해주련?
 
연구원: 그... 언제나 말씀을 어렵게 하시네요. 당신의 시프터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맞다면, 그분은 앞으로 당신의 오리지널이 함께 활동하게 될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구애명:항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잘 알아 들으면서. 나는 그리 어렵게 굴지 않는단다. (가벼운 대답과 함께,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수고 많았으니 푹 쉬렴, 너도.
 
연구원: ... 네. 정말,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연구원은 곧 주사를 놓겠다고 말합니다.
 
주사를 맞자 순식간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느낍니다.
 
겪어온 모든 일에 비하면 다소 허무한 죽음입니다.
 
고작 이런 결말을 맞이하려고...
 
어두워져 가는 시야에 순간, 당신의 시프터가 눈에 스칩니다.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당신에게 허락된 적 없는 것
 
왜 하필 지금일까요.
 
그렇다면, 이 감정의 이름은 미련일까요.
 
여러 생각을 뒤로하고, 무거운 몸과 의식을 저 어둠 건너편으로 보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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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집어삼킨 정적 속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을 인식합니다.
 
내리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 무기력한 몸을, 그나마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리면, 말단으로부터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는 자그마한 신호들이 전해져옵니다.
 
그렇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능은 분명 정지되었어야 하는걸요.
 
생체 반응이 사라질거라더니?
 
연구원의 말이 틀렸던 걸까요?
 
구애명:……? (잠깐 몸을 일으키고, 의문을 표하는 것마냥 손 끝을 내려다봤다. 생체 반응이 사라진다고 했는데. 나는 정지가 됐어야 했는데. 삐그덕대는 목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연구원들이 계속 말했었죠. 레플리카들의 무덤인 것 같습니다. 수명을 다한 모든 레플리카는 이곳으로 보내져 잠든다고 말이에요.
 
주위는 수술실, 혹은 진료실이 연상되는 곳입니다.
 
다만, 형실에서 보았던 것보다 몇 배는 되어보이는 넓이입니다.
 
당신이 누워있던 침대가 있고, 수많은 서류가 쌓여있는 책상이 한켠에 위치합니다.
 
평소라면 연구원들이 막아서 보지 못했을 서류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기는 이계이니... 얼마나 정확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주위를 둘러보던 중, 문득 자신의 몸 상태를 깨닫습니다. 비록 약효는 듣지 않았지만, 조만간 스스로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최대한 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죠. 이계에서는 늘 당신이 알지못한 사이 괴상한 사건에 연루되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조심한다고 해서 소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평소라면 이계를 헤매고 있을 유하를 구해 함께 탈출하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그 아이가 있을 리 없잖아요.
 
구애명:나만이 이상한 건가. (잠깐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가 곧 제대로 서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여기, 나의 시프터가 있을 리는 없으니. 알아서 몸 조심을 하고 알아서 혼자 나아가야 하는 거다. 구애명은 여전히 은은히 웃으며 서류철로 다가갔다. 뭐가 적혀 있을까요.)
 
서류를 보려는 찰나, 어디선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똑똑, 익숙한 두 번의 두드림과
 
선유하:선유하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익숙한 목소리
 
구애명:……들어오세요. (나즈막하게 대답을 해줘야만 네가 들어올 것 같아서. 놀란 마음 보다는 그게 먼저였다. 아무래도,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지만 계속해서……구애명은 본인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고.)
 
들어오라 답하자, 익숙한 사람이, 선유하가 문을 열고 밖에서 들어옵니다.
 
혹시 마지막에 저 아이의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이계에 휘말려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찰나의 생각도 잠시
 
당신의 시프터는 평소와 같이 단정한 걸음으로 당신 앞에 섭니다.
 
선유하:또 다시... 휩쓸려버렸어요, 선생님. 다행이에요, 그래도 금방 선생님을 찾아서... (제 두 손을 꼭 모아쥐며 어릴 때처럼 웃어보였다.)
 
구애명:…….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조차 모른 채로 가만히 너를 바라보다 언제나처럼 웃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내 앞에 아이가 있으니까.) 너무 놀라지는 말고. 이번에도 도와줄테니. 무엇부터 했으면 좋으련?
 
선유하:(슬쩍 연구실의 빈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가, 표정을 굳히고 빠르게 제 선생님을 보았다. 언제나 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는데, 날 구하면서도 꼭 내 의견을 묻는 다정함에 굳었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피어올랐다.) 뭐든, 원하시는 대로... 이번에도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요.
 
구애명:……여기가 어디인 지는 알고 있니? (아무래도, 이계라는 곳에…… 기묘하게도 아이가 끌려온 모양이었다. 물론 이 이계는…… 레플리카가 죽어가는 평범하지 않은 곳이지만. 네가 그걸 알고 있을 지, 없을 지. 상냥하게 웃으며 네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은, 나갈 수 있게끔 주변을 둘러보는 게 어떨까.
 
선유하:...... 네. 알고 있어요. 다시 이계에... 떨어진거겠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끄러미 제게 내밀어진 손을 내려다봤다. 저 손을 다시 잡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두어번 세차게 흔들더니 조심스레, 손을 올린다.)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구애명:그래, 오늘도 다치지 말고 안전히 돌아가야지. (서류나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래도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시금 아까 보려고 했던 서류로 다가가 슬쩍 들춰봤다.)
 
서류를 들춰봅니다.
 
하얀 백지 위에서 검은 글자들이 움직이더니 한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이상한 일이다. 원하는 곳의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시프터가 존재한다니.]
 
구애명:(원하는 곳의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시프터. 잠깐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다간, 그 옆으로 붙어 다니며 연구실 안을 둘러봤다.)
 
당신의 시프터를 바라보면, 마침 다시 넓은 연구실의 한쪽 구석을 보고있던 유하가 눈을 돌려 마주 바라봅니다.
 
그리고 팔에 붙어오는게, 무언가에 마치 겁을 먹은 것 마냥,
 
그 시선을 따라 연구실을 바라봅니다.
 
연구실이 넓었던 이유는 이 탓이었을까요?
 
한쪽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발견합니다.
 
비명을 지를 필요도 없고, 수많은 죽음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그야, 저들은 모두 활동이 정지된 '모조품'
 
즉, 레플리카이니까요.
 
그리고 바인더 당신 또한,
 
마찬가지잖아요?
 
저건 당신도 겪었어야 할 미래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이 아닙니다.
 
시체로 이루어진 산의 꼭대기엔 어쩐지 말라비틀어지고 등뼈가 튀어나온... 이상한...... 생명체가 있습니다.
 
두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가볍게 몸을 떠는 그것의 주변으로 시뻘건 선혈이 튑니다.
 
아까부터 아이가 보던 게 혹시... 저건가요?
 
구애명:……아까부터 저런 걸 보고 있던 거니? (옆에 붙어 있는 아이의 팔을 잡아 조금 끌어 당기더니만 뒤에 숨기고서.) 흐음.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생명체들을 바라봤다.)
 
선유하:(말 없이 그저 끄덕이며, 그의 뒤로 숨어 또다시 약한 척을 했다. 작게, 무서워요 선생님... 이라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고)
 
시프터를 등 뒤로 숨긴 채 생명체에게 집중하자면, 귓가에 무언가 우그적, 우그적 하고 씹어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괴물은 둘을 향해 휙 돌아보며...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방금 전까지 시체, 아니... 활동이 정지된 레플리카의 사지를 뜯어먹던 괴물은 산을 구르듯 내려오며 두사람에게로 달려듭니다.
 
거칠게 내려온 괴물의 꼬리에 후려맞은 책상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박살납니다.
 
도망을... 쳐야겠죠.
 
두 사람은 살벌하게 피가 묻은 입을 쩍쩍 벌리며 따라붙는 괴물로부터 도망칩니다.
 
선유하:선생님, 저쪽에 문이 있어요...! (손을 잡힌 채 뒤에서 따라 도망치며 연구실의 문을 가리킨다.)
 
구애명:(네 말에 눈을 돌려 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그쪽으로 뛰었다. 조금은 느린 속도였지만…… 삐걱대는 몸 치고는 제법 잘.)
 
아이의 말대로, 연구실에서 뛰쳐나가 문을 닫습니다.
 
철문 안쪽에서 울부짖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지만, 조금쯤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유하:... 선생님, 괜찮으세요...? (걱정하는 척 하며, 물론 걱정하고 있지만... 손을 슬쩍 잡아 빼고서 품에서 손수건이라도 찾아본다. 물론 그 사이에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튀어나오고는 있지만... 이 정도라면 잠깐 정도는... 손수건을 꺼내 제 바인더의 뺨을 닦았다. 무언가 묻어나올 리도 없는데)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도망쳐야겠어요.
 
구애명:……그래. 네 말이 맞다. 어서 도망가야겠구나. (뒤를 돌아 쿵쿵대는 철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네가 말 하는 대로 이유불문 따라주는 것은, 아무래도 구애명(오리지널)의 사명이고 구애명(레플리카)의 삶이라.)
 
그 말이 맞습니다.
 
손을 놓았음에도 귀에는 여전히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고, 이 철문은 언제까지 버텨줄지를 모르겠습니다.
 
마치, 당신 몸처럼 말이에요.
 
두사람의 앞엔 어두운 복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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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로부터 벗어난 두 사람은 길고 긴 복도를 쭉 걸어 나갑니다.
 
메인 조명이 모두 꺼져 컴컴한 복도에는 발치에 켜져 있는 유도등이 보이는 빛의 전부입니다.
 
오직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발소리와...
 
멀리서 간혹 들려오는 괴물의 울부짖음 만이 고요한 복도에 울립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도 가도......
 
어째서인지 복도가 끝나지 않습니다.
 
선유하:......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평소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고, 그보다는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제 속내는 모두 드러내지도 않은 채 약한 척, 여린 척만을 보이는 것. 그게 그의, 시프터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소맷자락을 잡고서 힘든 척, 말끝을 늘인다.) 저는 조금 힘든 것 같아요오...
 
구애명:……괜찮단다. (숨이 다할 때까지 제 꼿꼿한 심성을 어찌 할 바 모르는 놈. 남을 굽어 살핀다는 것의 저의에는 남들보다 분명한 우위라는 당연한 귀족주의적 의식. 그런 게 깔려있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남에게 뻗어지는 상냥한 손길, 눈빛, 하물며 묘하게 남을 낮추는 듯한 말투까지. 그게 애정과 다정으로 덮어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많이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는 건 어떻니? 아무래도…… (뒤를 바라보다가, 잠깐 귀를 기울여봤다.) 적어도 조금 정돈 괜찮지 않을까 싶단다.
 
선유하:네...... 네, 선생님. 조금만 천천히 가요. (긴 복도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은 채, 등 뒤에 숨어 눈을 내리감았다. 기댈 수 없어. 기대기만 할 수는 없어. 나를 돌아보시지 않을 동안만, 잠시만, 조금만 쉬고 다시 나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여기서 나가서, 나가서... 나가서? 나가서 어떻게 할건데,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의문을 억누르며 선유하는, 그의 시프터는 눈을 떴다.) 선생님은... 여기서 나가면 무엇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구애명:음…….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를 할 수 있던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게 말이야. 언제는 내가 무언가에 욕심이 있었니? 이번에도 그렇단다. 무언가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네.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교묘히 숨기는 말들이 많아졌다.) ……일단 그런 건 나가서 이야기 할까, 아가. (손을 뻗어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 쓰다듬. 뭐든 안심해도 괜찮다는 듯이.)
 
선유하:(조금쯤, 무언가 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하던 눈이 금세 바닥을 내리봤다. 욕심 한두개쯤 가진다고 죽지 않잖아요. 머리속으로는 불평을 하며 습관적으로 그 손에 머리를 맡긴 채 쓰다듬을 받으며 어리광을 부리다,) 네에- 나가야... ... 나가야죠. (놀라며 뒤로 물러나 입술을 짓씹었다.)\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순간, 눈 앞의 세상이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가 뒤로 물러나며 눈 앞에서 사라진, 그와 닿았던 찰나에 보았던 것은,
 
분명 이 복도에 있는 모든 문이 순식간에 일렁거리더니 전부 괴물의 입으로 변해버렸었습니다.
 
꿀렁거리는 점막에서는 질척한 타액이 뚝뚝 흘러내리고,
 
바로 옆의 입은 몇 겹으로 둘러싸인 날카로운 이빨을 살벌하게 움찔거리며 당신이 입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한 걸까요?
 
당신의 시프터와의 접촉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온 복도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갑자기 천장에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에 금이 가며 작은 돌조각과 먼지가 파스스 떨어집니다.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들리며 점점 천장에 생긴 균열이 커져갑니다.
 
대체 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구애명:……이런.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잠깐 보인 이계, 그리고 쿵쿵 울려대는 복도에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는 곧 단단한 얼굴로 다시금 너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더 쉬진 못 할 것 같구나. (손을 잡으라는 듯 팔을 내밀고는, 가만히 너를 바라봤다.)
 
선유하:...... 네. (이렇게 손을 내밀어오면 물러날 방법도 없었다. 스스로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잔뜩 불안을 담은 눈으로 그 손을 잡고, 꽈악 쥐었다.)
 
돌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져내립니다.
 
구멍이 뚫린 천장에서, 아까 두 사람을 쫓아오던 괴물이 긴 목을 들이밀며
 
씨이이익,
 
입고리를 휘어 올립니다/
 
안구 부분이 공허한 괴물이 구멍으로 빠져나오려고 목을 길게 뺄 때 마다 계속해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쩌저적 갈라집니다.
 
건물은 점점 무너져내립니다. 뒤에서는 괴물이 쫓아옵니다.
 
달려나가는 발 앞이 꺼지고, 커다란 돌이 금방이라도 머리를 부술 것처럼 떨어지고, 유도등은 불길하게 깜빡입니다.
 
이 모든 광경에, 환상처럼 모든 문이, 괴물의 입이 당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끝없는 복도를 달립니다.
 
달립니다. 달립니다. 끝없이 달립니다.
 
무너지는 복도에서, 멀쩡해보이는 문을 찾습니다.
 
괴물의 입이 아닌, 그저 평범한 문입니다.
 
자, 저기로 들어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천장에서 뛰어내린 괴물은 두 사람의 바로 뒤까지 쫓아와 커다란 손으로 건물 잔해를 낚아채 집어던져대고 있습니다.
 
커다란 잔해가 발 앞에 떨어지자 두 사람은 굴러버리고 맙니다.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쫓아온 괴물이 징그러운 입을 벌리며 달려듭니다.
 
그 순간, 당신의 시프터가, 유하가 손을 놓으며 문 쪽으로 등을 강하게 밀어버립니다.
 
떠밀려버린 당신이 뒤를 도는 사이, 괴물의 꼬리는 유하를 낚아채 가버립니다.
 
당신의 발 앞에 수많은 건물 잔해가 떨어지며 그대로 문이 닫혀버립니다.
 
어째서, 그는 당신의 등을 밀었던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닫혀가는 문 틈 사이로 보았던 그 아이는,
 
어째서인지 바스러지기 시작한 얼굴을, 볼을 잔뜩 올려 웃어보이며,
 
 
무언가, 말했던 것 같은데,
 
굳건히 닫힌 철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괴물의 울부짖음 또한 더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대체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시프터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당신은 바인더로서, 그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당신은 바인더로서, 그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구애명:(눈앞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말았다. 아니, 놓치고 말았다기에는 그것보다 한 걸음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바인더임에도 어찌 그리도 쉽게 시프터를, 나의 아이를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삽시간에 공허해진 푸른 눈이 멍하니 문가를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것도, 무얼 해야 하는 지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건, 그러니까, 놓친 게 아니고…… 빼앗긴 건가. 생에서 지키고 싶은 것을 빼앗겨 본 적은 처음이어서, 감이 오질 않았다. 소모품은 내 쪽인 게 ,그게 맞는데. 그게 분명한데도. 어찌 마지막 말조차 못 들었단 말인가. 애석한지고. 눈을 감았다. 쿵쿵 울리는 심장 박동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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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갇힌 방 안은 익숙한 듯 낯선 풍경입니다.
 
그야, 당신이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던 연구실과 똑같이 생겼는걸요.
 
하지만 어쩐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애명:(내가 가장 마지막에서 마지막의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고. 결국에는 돌고 도는 시간 속에 죽어가고 있다고 믿게끔.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이계고 진실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포기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내어준 목숨을, 어떻게든. 하지만, 어떻게? 구애명은 이럴 때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몰랐다. 생각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고, 그럴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삐그덕대는 발걸음으로 주변부를 돌았다. 이곳에 어딘지, 이게 뭔지, 이게 맞는지.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노력, 그거로 다 됐으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텐데.)
 
노력, 하나로 되는 일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작은 노력이 모여서 무언가 되기도 하죠.
 
생각하려, 움직이려 노력해봅니다.
 
이곳은 당신이 알던 그 장소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계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무언가가... 조금 다릅니다.
 
주위를 돌아봅니다. 작은 모니터에 한 시트가 띄워져 있습니다.
 
구애명:(모니터? 시트?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멍한 시선이라도 그곳으로 집중해보려 애썼다)
 
어딘가에 다녀온 기억을 끝없이 적어내린 목록 같습니다.
 
가장 오른쪽 끝에는 성공과 실패 여부가 적혀있는데, 모두 성공이라고만 적혀있습니다.
 
아, 맨 아래에 위치한 목록에는...
 
아직 이름도, 날짜도, 성공/실패 중 어떠한 것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오직 커서만 무의미한 깜빡임을 이어갑니다.
 
구애명:(깜빡이는 커서, 적어내려갈 수 있는 칸. 그런 게 전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단은,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먼저였다. 저기에 뭘 써야 할지 생각이 가능 할 정도까지만.)
 
시선을 내리면, 모니터 아래에 차트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진료 차트와 유사한 생김새입니다.
 
이름이나 나이, 신장 등의 정보는 적혀있지 않지만, 사람의 실루엣이 앞뒤로 그려진 그림에는 곳곳에 작은 표시와 함께 필기가 되어있습니다./
 
식물화 된 팔을 절단, 이식
 
굳은 안구를 적출, 이식
 
피부의 비늘을 제거, 회복
 
무언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부의 박리, 회복 중
 
익숙합니다. 익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변이가 일어난다변 그에 대한 유지보수를 받았겠고, 그것을 기록하는 건 연구원들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야, 이건 당신에게 일어났던 변이가 아닌걸요?
 
구애명:…….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무슨 내용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지쳤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냥 모른 척 하고 있는 걸 지도……. 자조적인 웃음이 헛헛하게 튀어나왔다. 딱히 보고 싶지도, 지금 눈에 띄지도 않았으면 했던 것들인데. 꼭, 아주 공교롭게도 항상.)
(그런 것들은 가장 최악의 상황에 눈에 밟히지.)
 
차트를 내려놓는 손에 무언가가 채입니다.
 
그대로, 작은 무언가가 당신의 발치로 굴러떨어집니다.
 
USB입니다.
 
구애명:(데구르, 굴러 떨어진 USB를 잡아 들었다. 곧 앞에 있는 컴퓨터에 그것을 끼워 넣고는 컴퓨터에 폴더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공교롭고, 싫지만…… 결국은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해.)
 
폴더가 뜨고, 단 하나의 파일을 엽니다.
 
오디오 파일이, 재생을 시작합니다.
 
약간의 공백 후, 연구원은 다시 이야기합니다.
 
엇비슷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대체 이게 뭐죠? 아니, 당신은 어쩐지 이 내용을 전부 알아들을 것만 같습니다.
 
그야 이건...
 
한참 답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얼마 뒤,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와 함께 파일은 종료됩니다.
 
그리고, 인지합니다.
 
녹음 파일이 끝날 무렵, 그 아이의 목소리의 뒤로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점차 다가와
 
쿵-쿵- 거리며 발밑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젠 이 소음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먹이 한 마리를 놓친 괴물은 아까와는 달리,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바로 벽을 부숴 당신의 앞에 나타납니다.
 
꼬리에는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달고 말이에요.
 
선유하:선생님, 선생님! 도망치세요! (꼬리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소리 높여 도망치라며, 색을 잃은 머리카락이 눈 앞에서 흔들렸다. 색을 잃은 눈동자가 제 선생을 바라보았다. 부탁이에요, 제발, 당신만은 살아야지. 당신이 살지 않으면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이 되는데. 그렇기에 당신만은 살아야한다며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썼다.)
 
구애명:(도망? 모든 걸 알고 있든, 모르든 구애명의 선택은 같았다. 잠깐 붕 떠 있던 눈동자가 돌연 빛을 담았다. 광채가 돌았다. 똑바로 눈에 힘을 주고 아이를, 괴물을 쳐다봤다.) 아가,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이건 조금 억울한 일인데. 뒷 말을 삼키며 짧게 웃었다. 이 상황에도 나의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이게 무슨 일이고, 무엇이 됐든.) 나는 아가, 너를 두고 도망가지 않는단다. 그러니 내게 명령하지 말렴. (단정하고 상냥한 말투였다. 속 알맹이와는 다른.) 어차피 듣지 않아.
 
그를 구하려 움직이려는 찰나, 여전히 아이를 옭아맨 꼬리를 거세게 뒤흔들며 괴물이 빠르게 돌진해옵니다.
 
선유하:네, 듣지 않으시겠죠. 언제나 그러셨으니까요! (짧은 생을 갖고 태어나서도 처음으로, 본래의 기억에서도 처음으로, 그에게 악을 써가며 외쳤다.) 그래서, 날 구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뭔데요? 이 모든 일에는 무슨 의미가 있죠? 당신이 이계까지 발걸음해서 날 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건 결국 이딴 변이 뿐인데! (감정에 북받친 외침은 결국 눈물이 되어 바스라져가는 피부 위로 떨어지다, 괴물의 꼬리짓에 따라 흩어졌다. 이제는 어떻게 되어도 좋아. 어차피 돌아가지 못할거라면, 당신과 함께 이곳에 있는다면...) 차라리 말이에요 선생님, 저랑 같이 있어주시지 않으실래요?
 
구애명:(아이가 살면서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든, 무엇을 하든. 구애명에게는 올곧은 신념이 있었다. 아이를 두고 혼자 갈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호한 말투였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에나 나오는 그런 단호하고도 단단한 목소리가.) 그래서 다 포기하고 이대로 끝을 낼 순 없잖니. 나는 너를 혼자 두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단다. 네가 없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 그정도로 의미없는 삶은 싫어하니 아가, 네 청도 거절하겠어. (작게 심호흡을 하곤 눈을 감았다가는 떠냈다. 주변에서 괴물과 대응할만한 무기를 찾았다. 후려칠 수 있는 거라면 좋겠는데.) 구해서, 보란듯이, (적어도 너만은.) 나가자. (그게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 멀리에 긴 목검 하나가 보입니다.
 
저걸 누가 갖다두었을까요. 당신의 시프터일지, 당신일지, 아니면 이계의 환상일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목검은 당신에게로 달려드는 괴물의 입을 치지만, 이미 자포자기한 그는 벗어나기를 단념한 듯 꼬리에 매달려 힘없이 흔들리기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목검이 괴물의 머리를 칩니다.
 
괴로워하던 괴물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 당신을 향해 당신의 시프터를 날려버리고,
 
당신의 시프터는 힘없이 당신의 품으로 굴러떨어집니다.
 
선유하:... 나가면, 나가면 뭐가 있는데요? 저는 어차피 곧 폐기될텐데, 당신이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관절 하나하나가 굳어갔다. 새하얀 자기인형처럼, 처음부터 만들어진 인형이었다는 것처럼, 바인더라는 실 끝에 매달려있던 마리오네트는 부서져가며 울었다.) 제가 없더라도 또 다른 제가 당신을 따를거에요. 그 아이라면 저보다 더 당신의 말을 잘 들을거에요. 저는, 저는 더 이상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없어요. 나가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잠들면, 더이상 위험할 일이 없는데도, (왜 저를 구하려 하시나요. 울음에 섞인 말은 끝끝내 나오지 못했다. 품에 얼굴을 묻고,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것인지 숨을 골라쉬며,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구애명:(그대로 아이를 감싸 안고는 입을 다물었다. 더 해줄 말도,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만히 네 등을 쓸어주다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을 때에야 말을 뱉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하나가 폐기된다고 해도 그게 아가, 네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 테니까. 이거면 대답이 되겠니? (인형처럼 굳어가는 몸을 가만히 끌어안고, 언제까지고 있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없냐 묻는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이대로라도 괜찮다면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은 모든 걸 포기하고 네 자신을 포기한 대가라고 한다면 싫었다. 이런 이계에 너를, 남겨둘 순 없었다.) 또 다른 아이도 유하, 너고 지금의 유하도 선유하인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못 들은 거로 할테니 자학은 그쯤 하련? 나는 너를 그대로의 너로 대할 거야. 네가 나를 그리 대하는 것처럼. 아가, 네가 얼마나 도망을 가고 거절을 한다고 한들 너를 구하고자 하는 내 마음은 꺾이지 않는단다. 무엇이든 포기보단 나아가려는 힘이 강한 법이니.
 
아이를 품에 안고 눈 앞의 장애물을 바라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저 괴물을 넘어 도망쳐야 할텐데,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찾습니다. 도망칠 구멍을 찾습니다. 그리고 발견합니다.
 
괴물의 발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발을 디딘 돌 틈 사이로 두 사람이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컴컴한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는 않아보이지만, 당신이 알게 된 것들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일단 이곳에서 벗어난 뒤에야 뭐라도 할 수 있겠죠.
 
꼬리를 뒤흔들며 주변 벽을 무너트리는 괴물의 발악에 두사람 모두 파편에 맞지만, 아슬아슬하게 함께 구멍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한참을 떨어지던 당신은 어둠 속에 구르듯 착지합니다.
 
저 위에선 괴물의 울부짖음이 들려오지만, 그것은 두 사람을 쫓아오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프터와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고동과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울려퍼집니다.
 
img
 
어둠 속에서, 이제 미루고 쌓아둔 대화를 해결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낍니다.
 
물론, 변이와 망각으로 인해 제대로 된 대화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선유하:...... 결국, 도망쳤네요. 어떻게든... 대단하세요. (난 포기했었는데 말이에요. 쿡쿡 웃다가도 제멋대로 꺾이기 시작한 다리에 고통스러워했다. 아아, 떨어질 때 잘못해서 부러진거라고는 못 속이겠지? 몰려오는 고통에 손을 꽉 잡으면서도, 웃어보였다.)
 
구애명:……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너는 아니? (단정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여전히 그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자꾸만, 내 몸만 삐걱이는 것 같은지. 이게, 다…… 내가 정말이 아니라 레플리카여서. 내 몸이 이렇지 않았다면, 너도 조금 더…… 변이하지 않았을 텐데.) ……자, 그럼 이야기 해볼까. 어째서…… 아가, 너도 레플리카인 거지?
 
선유하:알고 있으실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당신의 세계에서 따지자면 이계인, 사람들이 주로 평행세계라고 하는 곳에서 왔어요. 그리고... 제 바인더를 찾아서, 그를 구하기 위해 이계에 뛰어들었죠. 그 다음이야, 어째서인지 평행세계에서 온 당신을 만나고 괴물을 피해 도망치고... (짧게 신음하며 다시 손을 쥐었다. 분명 이 정도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는데, 있었을텐데, 이번만큼은 참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를 아프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고, 문득, 고통 속에서도 눈을 떴다.) 너도, 라니... 당신도 레플리카라고?
 
구애명:아가, 너를 구하기 위해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레플리카. 나도 그것이니. 처음에는 네 말이 대부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중간부터 눈치를 챘단다. 하지만 어떻게 전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지금까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어. 자,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잔잔하게 웃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아까도 한 말이지만, 아가. 나는…… 네가 아무리 레플리카라고 할 지라도 구할 수밖에 없어. 구할 거란다. 설령 모든 상황에서 내가 마모되고 부서진다고 할 지라도……. (가만히 부서져 가는 네 모습을 바라보다 가볍게 바스라져가는 살결에 손을 댔다. 그대로 쓰담아 내리고, 쓰다듬고. 몇 번을.) 폐기된 레플리카라고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찾아 이 넓디 넓은 이계에서 도망간다고 해도 찾지 않겠지.
이제부터, 아니…… 시작부터 나의 시프터는 아가, 너였단다. 그러니 대답해주렴.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오리지널의 그 어떠한 권리도 받지 못한, 그저 시프터를 구하기 위해 재단에서 만들어낸 모조품 중 하나는,
 
당신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이계에 저항하며 수많은 변이를 받아들이고, 소중한 추억을 잃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사명을 이행했습니다.
 
아이 또한 마찬가지이겠죠.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앞으로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의 시프터가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고작 레플리카일 뿐인데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몇 번이고 잡아왔던 손을 내밀고, 맞잡기를 기다립니다.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건 세 개의 문
 
양쪽 끝에서 빛이 나는 문 두 개와 가운데에 놓인 빛나지 않는 문 하나
 
직감합니다. 저 문 중 하나를 지나면 둘 중 누군가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이곳에 남을 수 있습니다.
 
선유하:전혀... ... 전혀 몰랐어요. (눈을 둥글게 뜨고는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무덤에 있던가 생각해보면, 그 또한 레플리카였기에, 폐기되었기에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냈다. 그리고는, 무너졌다. 몸을 지탱하던 팔이 힘을 잃고,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힘없이 웃었다.) 그러면, 나나 당신이나 똑같네요. 폐기될 레플리카들이 서로 만나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재단도 몰랐겠죠. 내 세상에서는 레플리카 바인더란 없고, 당신의 세상에서는 레플리카 시프터란 없으니... 참, 웃긴 상황이 됐어요. (웃다 기침하다 웃다 신음하다를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 아...... 이제는 정말 힘들어요. 왜 이렇게 힘들지? 여기 조금만 더 누워있다 가면 안되나요? 당신은 절 두고 가지 않을거잖아요? 저 문 중 어떤 것을 지나든, 어디로 가든, 날 데리고 가요. 그 외의 것은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까... 네?
 
구애명:많이 힘드니? (짧게 물으며, 이쪽 또한 가지런하지 못한 팔다리로 하여금 너를 안아 들었다. 두고 가지 않는다는 말을 몸으로 행하는 중이었다. 절대, 너를, 두고 가지 않아. 그런 말을 바깥으로는 내지 않은 채로 그렇게.) 폐기될 레플리카들이지만 서로에게는 레플리카 그 자체로 진짜지 않겠니.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진실로, 진심으로, 우리 그 자체로 살아왔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될 이유가, 그것으로, 완전하지 않겠니. (가만히 말을 내뱉자면 그것이 진실이 됐다. 레플리카들은 레플리카를 만나 그로 하여금 완전해졌다.) 우리가 필요 없는 레플리카인 세계가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전부인, 우리가 진짜인 세계도 있어야 마땅한 것이겠지. (단단하게,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겠다. 아가, 네 삶을…… 살아나가렴. (가장 왼쪽의 반짝이는 문을 택하고 나아갔다.)
 
그렇게 당신은, 레플리카인 바인더는 자신의 시프터를 안아든 채로
 
그가 온 세계로 나아갑니다.
 
비록 우리 둘 모두 레플리카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라면 어디든 살 방도가 있지 않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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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길잡이 역할로 만들어진 레플리카 시프터가, 어째서인지 똑같이 레플리카 바인더의 손을 잡고 귀환했습니다.
 
이곳은 바인더인 당신의 세계에 있던 유물이 없어 레플리카 바인더라는 개념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혹시 모릅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요.
 
재단에서 당신에 대한 관심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어떻게든 당신을 살려두려 하겠죠.
 
비록 이곳은 당신이 살던 세계가 아니며, 오리지널의 시프터, 선유하가 있기도 한 곳이지만,
 
당신이 이 세계에 남기를 선택한다면 재단에서는 얼마든지 살 곳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The End.
 
구애명:
rolling 1d6
 
(
2
 
)
 
 
=
2
 
선유하:
rolling 1d6
 
(
6
 
)
 
 
=
6
rolling 1d6
 
(
5
 
)
 
 
=
5